세간에선 그를 ‘제왕’이라 불렀다. 기념우표도 나왔다. 1999년 스포츠채널 ESPN이 뽑은 20세기 운동선수 35위. 타임과 뉴스위크,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표지인물로도 등장했다.
마이클 조든이나 타이거 우즈에 비견되는 스포츠 스타. 그러나 그는 말(馬)이었다.
희대의 명마 세크리테리엇(Secretariat).
관운장이 탔던 적토마의 재림일까. 별명도 ‘빅 레드(Big Red)’였다. 몸통둘레 193cm에 체중 513kg. 경주마답지 않은 거구였지만 바람을 갈랐다.
1970년 3월 미국 버지니아 주 태생. 태어났을 때 마주인 헬렌 트위드는 불만에 가득 찼다. 두 목장의 교배로 낳은 말 2마리. 헬렌은 동전을 던져 선택권을 뺏겼다. 세크리테리엇은 ‘돈 되는’ 암 망아지를 내주고 남은 말이었다.
하지만 심통은 1시간을 가지 않았다. 빅 레드는 분만 20분 만에 일어나 걸었다. 45분에 어미젖을 빨았다. 당시 목장일기는 “세 다리가 하얀 독특한 생김새에 누구라도 반할 것”이라고 적었다. ‘세 다리가 희면 아들에게 물려주라’는 경마 격언의 원조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두 살배기 데뷔 때부터 세크리테리엇은 남달랐다. 페널티로 혼자 뒤에서 출발한 지역 챔피언전. 마지막 트랙도 꼴찌로 들어섰으나 포효 한 번에 상황은 역전됐다. 당시 언론은 “서서 여물 먹는 말 사이로 빅 레드만 달렸다”고 묘사했다.
절정은 1973년 6월 9일이었다. 거칠 것 없이 켄터키 더비와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를 제패한 빅 레드. 벨몬트 스테이크스에서는 믿을 수 없는 기록까지 보여 준다. 2400m를 2분 24초 만에 주파. 경마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인 ‘트리플 크라운’을 거머쥔다. 말이 왕좌를 차지한 것이다.
영웅의 대업 뒤엔 인재(人才)가 있었다. 환갑 나이로 일선에서 물러났던 명 조교사 루신. 빅 레드를 보자마자 은퇴를 철회했다. 강태공이 평생 기다린 문왕(文王)과의 조우였다.
대중의 지지도 루신의 공이었다. 당시 난무했던 ‘작전’이 없었다. 끼어들고 방해해도 묵묵히 달렸다. 비교적 낮은 승률에도 사람들이 지금도 빅 레드를 최고로 꼽는 것은 정정당당함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대지를 달리는 적토마의 기개를 사람들은 사랑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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