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섬을 공격하지 못하면 전쟁에 진다는 걸 히틀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린 결의를 굳게 다져야 합니다. 영국이 앞으로 천년만년 지속된다면 후손들이 ‘그때야말로 그들의 가장 훌륭한 시기였다’고 평가하지 않겠습니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기갑군단은 프랑스를 제압하고 다음 차례로 영국을 노리고 있었다. 이런 국가 위기 상황에서 나온 지도자의 일성(一聲)은 온 국민을 결집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영국에 망명 중이던 당시 프랑스 육군 소장 샤를 드골도 BBC 방송을 통해 실의에 빠진 프랑스 국민에게 고했다.
“오늘 우리는 패배했지만 내일은 승리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레지스탕스의 불꽃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연설은 대(對)독일 저항운동을 뜻하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기원이 됐다.
처칠과 드골. 20세기 유럽 정치사의 두 거목(巨木)인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국민을 감동시켰고, 움직였으며, 결국 나라를 나치의 무서운 공격에서 구해냈다.
“우리는 바다에서 싸울 것이고 육지에서 싸울 것이며, 들판에서, 시가지에서도 싸울 것이다.”(처칠)
“프랑스는 전투에서 졌다. 그러나 프랑스는 전쟁에선 지지 않았다.”(드골)
대조법과 은유법, 역설법, 그리고 반복법 등을 동원한 화려한 수사(修辭)는 두 사람의 전매특허였다.
총리 시절 처칠은 “나에게는 피와 눈물과 땀밖에는 내놓을 것이 없다”고 말해 영국인들에게 믿음을 줬고 드골도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라 할 수 없다”며 국민에게 자부심을 선물했다.
이들이 원래 이렇게 달변이었을까. 아니다. 드골은 중요한 자리가 있으면 미리 써 놓은 원고를 밤새워 외운 다음 찢어버리고 연설에 나섰다. 처칠은 말할 때 발음이 미끄러지는 약점이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독서로 쌓은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도 품위 있는 언변의 기초가 됐다. 국가 지도자의 말이 갖는 무게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피나는 노력을 한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국민을 진정 감싸안고 감동시킨 대통령의 ‘말씀’이 얼마나 있었던가. 대통령의 말이 갖는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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