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한 도로나 철로 위를 사람들이 안전하게 횡단할 수 있도록 공중으로 건너질러 놓은 다리’란 뜻을 가진 육교(陸橋). 그 의미와 한글 풀이는 인간적이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육교는 ‘빨리빨리’로 표현되는 1960, 70년대 산업화의 산물이다. 느린 사람보다 빠른 자동차가 우선이었다. 차의 편의를 위해 사람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차를 피해 하늘에 육교가, 땅에 지하보도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가 1960년대 중반 무렵이다.
1966년 6월 25일 완성된 서울 중구의 서소문 ‘차도 육교’는 빠른 교통을 위해 한발 더 나간 것이다. 요즘은 고가도로라고 불리는 이 차도 육교의 개통식은 화려했다.
당시 서울시장이 5색 테이프를 끊었고 시민 중 최고령 부부를 초청해 차도를 위한 다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걸어 봤다. 길이 493m를 기념하기 위해 동서 양쪽에서 493번째로 다리를 건넌 차량 운전자에게 각각 특별선물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축복 받으며 탄생한 서소문 차도 육교의 영광은 서울의 차량이 늘어날수록, 보행자 중심의 교통 체제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시들어갔다.
1990년대 중반 서울경찰청의 교통량 조사에서 이 차도 육교는 가장 혼잡한 도로로 조사됐다. 이 무렵 서소문뿐만 아니라 서울의 차량 육교 상당수가 ‘도시의 회색 괴물’이란 지탄을 받기에 이르렀다. 서울은 사람이 걷는 게 ‘불안’하고 ‘불편’하며 차를 타는 것보다 훨씬 ‘불리’한 ‘보행삼불(步行三不)의 도시’라는 국제 사회의 지적까지 나왔다.
2000년대 들어 서울의 ‘땅 다리’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힘겹게 걸어 오르던 보도 육교부터…. 종로 광화문 을지로에서 그 흔하던 육교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안전을 위해 세워진 육교가 결과적으로는 무단횡단의 유혹을 부추긴다는 진단도 이런 현상에 한몫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육교가 화려하게 생겨나고 있다. 주로 주택가에서 생태공원이나 한강 둔치로 이어지는 다리들이다. 이들 육교는 아파트 값을 올리는 역할까지 한다고 한다.
육교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것이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다리이기만 하다면….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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