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6년 태릉선수촌 건립

  • 입력 2007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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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73개, 은메달 72개, 동메달 72개.

한국 스포츠가 역대 동·하계 올림픽에서 거둔 성적이다.

언제부턴가 올림픽은 참가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메달을 따느냐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메달을 많이 따내는 나라가 ‘잘살고 힘센 국가’로 통하는 것이다.

실제로 2004년 미국 버클리대의 매건 버시 교수와 다트머스대의 앤드루 버너드 교수가 40년간의 올림픽 성적을 분석한 결과 국가별 성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변수는 1인당 국민소득(GNI)이었다.

세계은행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GNI는 1만5840달러(2005년 기준)로 비교대상 208개국 가운데 49위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올림픽을 할 때마다 10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한국의 성적은 놀라운 수준이다.

그 배경에는 대규모 선수 합숙훈련장인 태릉선수촌이 있었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다.

1966년 6월 30일 건립된 태릉선수촌은 41년간 국가대표의 요람으로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를 지탱해 준 ‘비밀 무기’라 할 수 있다.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작고) 주도하에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지어진 태릉선수촌의 초창기 시설은 매우 형편없었다고 한다. 1969년 중학교 3학년으로 탁구 국가대표에 뽑혀 입촌한 이에리사(53) 현 태릉선수촌장의 말을 들어 보자.

“양철을 지붕에 얹은 체육관하고 운동장, 숙소 한 동, 식당이 전부였다. 내 기억에 레슬링, 여자 배구, 탁구, 사이클, 농구 정도가 선수촌에서 훈련을 한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스포츠는 정말 보잘것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선수촌이 지금은 총 9만3568평의 터에 빙상장 수영장 등 22개의 현대식 시설이 들어찬 매머드급 훈련장으로 변모했다.

선수촌 안에서만 18개 종목 400여 명의 선수가 매일 훈련하다 보니 애환도 많고 해프닝도 많이 일어난다.

2000년엔 여자 수영 유망주 장희진이 국가대표에 발탁됐으나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싶다”며 태릉선수촌 입촌을 거부해 국내 스포츠계의 이슈로 떠오른 적도 있다.

남녀 선수끼리 ‘눈이 맞아’ 결혼하기도 한다. 김병주-김미정(이상 유도), 김동문-라경민(이상 배드민턴), 김택수(탁구)-김조순(양궁) 커플은 태릉선수촌에서 사랑이 싹터 결혼에 골인한 케이스다.

태릉선수촌은 외국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훈련 장소다. 그곳엔 사랑과 열정, 투혼이 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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