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신을 끝으로 비행기는 사라졌다. 세계일주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이었다. 1937년 7월 2일 어밀리어 이어하트는 실종됐다. 40세 때였다.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이처럼 화려하게 주목받기도 드물 것이다. 여성이 비행기를 몬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던 때에, ‘여성 최초 대서양 횡단 비행’ ‘여성 최초 단독 대서양 횡단 비행’ 등 이어하트의 업적은 그저 ‘비행 성공’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다.
이어하트가 비행에 대한 꿈을 품은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였다. 미국 캔자스 주 출신인 그녀는 캐나다 토론토로 옮겨가 간호사로 일한다. 병원에 위문공연 온 곡예비행팀에 매료돼 하늘을 날겠다는 꿈을 품게 되면서 간호사를 그만두고 비행학교에 등록한다. 때마침 1920년대는 공중전으로 운항 기술이 크게 발달하고 고도 기록, 속도 기록 등이 잇따라 경신되는 등 항공 문화가 개화하던 시기였다.
대서양 횡단 비행기의 좌석은 처음엔 이어하트의 것이 아니었다. 훗날 남편이 되는 출판인 조지 퍼트넘이 남자 조종사 2명과 여성 승객 1명을 데리고 대서양을 건너는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피츠버그철강의 상속녀인 에이미 게스트가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가 안전을 염려한 가족의 반대로 무산되자 퍼트넘은 이어하트에게 전화를 건다. 비행에 대한 이어하트의 열정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터였다.
대서양 횡단 2개월 뒤인 1928년 9월 이어하트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뉴욕을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갔다가 뉴욕으로 돌아온다. 최초의 미 대륙 왕복횡단 비행 기록이었다. 항법시설이 없어서 어느 상공을 날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던 시절에, 이어하트의 활약은 실로 눈부신 것이었다. 첫 대서양 횡단 때 ‘감자 자루처럼 뒷자리에 앉아만 있었던 것’을 아쉬워하던 이어하트는 1932년 대서양 단독 횡단에 도전해 꿈을 이뤘다.
1937년 6월 1일 세계일주라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미국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를 출발한 이어하트. 아프리카를 지나고 미얀마, 싱가포르, 호주 등을 경유하면서 순탄한 비행을 하던 그녀는 7월 2일 오전 10시 남태평양 뉴기니를 이륙한다.
길을 잃어 목적지인 호우랜드 섬을 찾지 못하고 떠돌던 중 사라져 버렸다. 대대적인 수색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잔해조차 찾을 수 없었으며 이어하트는 전설이 돼 버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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