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 첫 장면에서 미국 군무원은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을 한다.
그의 지시로 시체 부패 방지용으로 쓰이는 포름알데히드가 싱크대를 통해 하수구로 흘러들어가고 돌연변이 괴물이 한강에서 출현하게 된다.
영화에 나오는 괴물은 상상이지만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은 실화(實話)다.
시간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 사망 시 시신의 본국 송환을 위해 방부 처리하는 데 쓰이는 포름알데히드 20상자(480병)가 영안소 부책임자인 미 육군 군무원 앨버트 맥팔랜드의 명령으로 싱크대에 버려졌다.
한국인 군무원은 “식수원인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면 암과 출산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며 처음엔 지시를 거부했으나 맥팔랜드의 강압으로 결국 방독면을 쓰고 독극물을 버렸다.
이 사실은 이 한국인 군무원의 제보를 받은 한 환경단체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맥팔랜드는 환경단체에 의해 고발됐으나 미군은 신병 인도를 계속 거부했다. 그 이유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본문 22조의 ‘한미 양측의 재판관할권이 경합될 경우 공무 수행 중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미군이 1차 관할권을 갖는다’는 규정을 들었다.
미국과 한국 간 첨예한 이해가 엇갈려 논란을 빚고 있는 바로 그 규정이다.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SOFA는 주한미군의 법적인 지위를 규정한 협정으로 1966년 7월 9일 체결돼 이듬해부터 발효됐다.
미국은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수십 개 국가와 SOFA를 맺고 있지만 세부 내용은 약간씩 차이가 난다. 일본과 맺은 SOFA가 한국의 SOFA와 다르다는 얘기다.
한미 SOFA에서는 살인 강간 등 12개 중대범죄를 제외하고는 미군을 구속 수사할 수 없다. 12개 범죄도 ‘공무 수행 중’에 일어나면 미군이 범죄자에 대한 1차관할권을 갖게 돼 있다.
주한미군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또 선거철마다 일부 정치인에 의해 SOFA 개정 문제는 이슈로 불거진다.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 현실인 만큼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만은 없지만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점차 개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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