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명령에 일가족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제대로 물어볼 틈도 없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지하실로 내려가 두 줄로 나란히 섰다. 이들이 달아났다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사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지하실에 들어선 사람은 사진사가 아니라 무장한 병사 10여 명이었다. 누구인지 물어볼 틈도 없었다. 간단한 처형명령서가 낭독된 뒤 총알이 난사됐다. 생명이 붙어 있는 사람은 총검에 찔려 마지막 숨이 끊겼다.
1918년 7월 16일 밤 우랄 지방 예카테린부르크 근교.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황제) 니콜라이 2세 일가는 이렇게 처형됐다. 300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 온 로마노프 왕가도 14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1894년 부황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즉위한 니콜라이 2세는 군주로서 아무런 훈련도 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천성이 소심했고 지적인 자질은 거의 없었다. 좋아한 것은 그저 군대의 제복과 계급장, 행진 같은 것뿐이었다.
그는 제국의 유지를 위해 시대착오적인 반동정치를 펼쳤다. 유대인을 상대로 대규모 약탈과 학살을 방조했고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에 끌려들어가면서 나라를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내각의 대신들을 불신하고 황후 알렉산드라의 말에 따라 심령술사와 신앙요법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악마의 사제’로 불린 괴승(怪僧) 라스푸틴이 황실을 움직였다.
마지막 차르 일가의 유골은 소련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된 1991년에야 발굴됐다. 유골더미에서는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세 딸 올가, 타티아나, 마리야가 유전자(DNA) 분석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황태자 알렉세이와 막내딸 아나스타샤의 유골은 DNA 분석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떠돌던 아나스타샤의 생존설을 부추겼다.
일찍이 아나스타샤를 자처하는 이는 여럿 있었다. 애나 앤더슨이라는 여자가 가장 그럴듯했다. 앤더슨은 1차 대전이 끝난 직후 러시아 황실의 유산 상속권을 요구하는 소송까지 벌였고 1984년 사망할 때까지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994년 과학자들이 치아와 머리카락의 DNA를 분석한 결과 앤더슨은 니콜라이 2세의 딸이 아니라 프란치스카 샨츠콥스카라는 이름의 떠돌이 폴란드 여성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