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여행은 만 여섯 살이 되기 전인 1762년 1월 시작됐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딸 난네를과 아들 볼프강의 신동 같은 연주 실력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뮌헨 여행을 기획했다. 모차르트는 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3세, 오스트리아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연주하면서 대성공을 거뒀다.
모차르트의 17번의 여행 중 11번째는 1781년 5월 빈으로 이주하기 전 잘츠부르크에 살던 시절 이뤄졌다. 영국 런던에서 하이든과 알게 되고,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작곡을 배우는 등 모차르트에게 여행은 정신적 음악적 성숙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가 남긴 명곡 중에는 ‘파리’ ‘린츠’ ‘프라하’처럼 여행지의 이름을 딴 작품이 많다. 모차르트 교향곡 31번 ‘파리’(K297)는 1778년 7월 18일 파리 공개 연주회 콩세르 스피리튀엘에서 초연됐다. 당시 모차르트는 취직을 하기 위해 어머니와 둘이 독일 만하임을 거쳐 파리로 여행 중이었다. 그러나 22세 청년 모차르트는 가수인 알로이지아 베버를 사랑했다가 실연했고, 파리에서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는 등 뜻밖의 불행을 맞게 됐다. 당시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내 친구. 오늘은 내 생애에서 가장 슬픈 날이네. 지금은 오전 2시이고, 이제 내 어머니, 내 사랑하는 어머니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아. 신께서 어머니를 당신 곁으로 불러가셨네.”
그러나 만하임∼파리 여행은 그에게 남은 13년의 짧은 생에 있어 주목할 만한 의미를 지닌다. 이 시기에 지어진 교향곡 ‘파리’는 클라리넷을 처음 사용한 완전한 2관 편성의 교향곡이었으며, 웅대한 구상이나 치밀한 구성법이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임을 알렸다.
모차르트는 음표를 다루는 것만큼이나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어 등 외국어에도 능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세계화 천재교육’이 없었으면 사장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잦은 여행은 모차르트의 건강을 악화시켰다. 그의 죽음은 독살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잦은 여행을 해 병약해진 결과라는 설도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