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540년 英헨리 8세, 크롬웰 처형

  • 입력 2007년 7월 2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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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CGV의 미국 드라마 ‘튜더스-천 년의 스캔들’이 인기다. 영국 튜더 왕가 헨리 8세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이다. 여섯 명의 아내를 두는 등 여성 편력이 화려했고 그중 셋을 처형할 만큼 비정했던 헨리 8세. 그가 통치했던 시기는 그야말로 영국사의 ‘스캔들’로 불릴 만한 시대였다.

1540년 7월 28일 그 헨리 8세가 토머스 크롬웰을 처형했다. 이날은 헨리 8세가 다섯 번째 아내 캐서린 하워드와 결혼한 날이기도 했다. 드라마 ‘튜더스’에서도 만날 수 있는 캐릭터인 크롬웰은 토머스 울지 추기경, 대법관 토머스 모어(‘유토피아’의 저자)와 함께 헨리 8세의 총신(寵臣)으로 꼽힌다.

젊었을 적 상인으로, 금융업자로 활약하던 크롬웰이 정계에 입문한 것은 1514년 울지 추기경의 업무를 돕기 시작하면서다. 라틴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구사했던 이 야심가는 법률을 공부해 영국 의회의 의원이 됐고 헨리 8세가 ‘바람이 나서’, 첫 부인인 아라곤 왕가의 캐서린과 이혼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과 대립할 때 왕의 편에 섰다. 교황청과 대립하느라 울지 추기경이 축출됐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던 대법관 토머스 모어도 쫓겨났지만 크롬웰은 왕의 신임을 얻어 비서장관으로, 주교 총대리로 승승장구한다. ‘천 일의 앤’으로 유명한 헨리 8세의 두 번째 아내 앤 불린을 쫓아낼 때 간통죄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데 앞장섰던 사람도 크롬웰이었다.

왕실 재정과 정부 재정을 분리한 재정개혁, 교황청과 연계된 수도원 해산 등 크롬웰이 권력을 잡았을 때 시행한 개혁정책은 적지 않다. 특히 1534년 국왕을 영국 교회의 ‘유일 최고의 수장(首長)’으로 규정한 ‘수장령’을 선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로마 교황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고 왕권을 강화한 이 법률은 영국 종교개혁의 커다란 파고였다.

그러나 권력은 영원할 수 없는 법. 크롬웰의 견제세력이 생길 무렵 헨리 8세가 네 번째 결혼을 단행한다. 이 결혼은 인근 국가들과 정치적 동맹을 공고하게 하고자 추진한 것인데 이 결혼의 중매인이 크롬웰이었다. 그렇지만 크롬웰이 골라 준 클레브스 공국의 앤은 헨리 8세가 보기에 ‘안 예뻤다’. 신부가 마음에 안 들었던 헨리 8세는 6개월 만에 혼인 무효 선언을 했고 이 일을 계기로 크롬웰은 왕과 틀어진다. 여기에 정적의 이간질이 더해져 크롬웰은 결국 참수 당하기에 이른다. 왕의 여자 ‘천 일의 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크롬웰이 왕의 여자 ‘클레브스의 앤’ 때문에 몰락하게 된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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