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8월 11일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심리적 저항선인 2,600을 돌파하자 이렇게 선언했다. 당시 종가는 전날보다 43.84포인트 오른 2,635.84.
다우지수가 14,000을 찍은 요즘에야 이 같은 풍경이 우습기까지 하지만 당시로선 큰 사건이었다.
월요일이었던 10일 다우지수는 오전 내내 지지부진하다 오후 들어 뛰기 시작해 장 종료 전 30분 동안 일시에 14포인트가 급등하며 투자자들을 흥분시켰다. 직전 거래일인 7일 장중 한때 2,600 선을 넘었다가 장 막판에 다시 미끄러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 주가는 드라마적 요소도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것.
그러나 월가의 분석가들은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사실 외에는 강세장을 설명할 만한 근거를 내놓지 못했다. 국제 유가가 안정돼 인플레이션 위험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1년 전부터 지속돼 온 재료였다. 외국인 투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도 주가를 자극할 새로운 변수는 아니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넘치는 유동성이 떠받친 ‘관성’이 주가를 끌어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틱했지만 불안했던 상승세는 두 달 만에 대폭락으로 우울한 결말을 맺고 말았다. 그해 10월 19일 월요일, 개장부터 ‘팔자 매물’이 쏟아지면서 다우지수는 508포인트(22.6%) 급락한 1,738.74로 마감됐다. 이날 주가도 장 종료를 앞둔 마지막 30분에 103포인트가 한꺼번에 빠졌다. 하락 폭은 대공황의 서막을 알린 1929년 10월 28일의 12.8%보다도 컸다. 이튿날 월스트리트저널의 톱기사의 첫 문장은 “주식시장이 붕괴됐다(The stock market crashed yesterday)”라는 5개 단어가 전부였다. ‘블랙 먼데이’라는 신조어는 이렇게 탄생했다.
20년 뒤인 2007년 한국의 증시는 어떤가. 6월 중 ‘광의 유동성’은 34조 원이나 늘어나 한국은행이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아파트 분양 계약을 해지하고 주식을 샀다는 사람도 있다. 주식 투자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업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언제든지 ‘블랙 먼데이’는 나타날 수 있다.
‘투자의 달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말했다. “세상에서 주식을 사는 이유 중 가장 어리석은 건 주가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라고.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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