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9년 보이저 2호, 해왕성 최근거리 접근

  • 입력 2007년 8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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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8월 25일은 내가 태양에서 약 45억 km 떨어진 해왕성에 다가간 날이다. 명왕성이 2006년 8월 행성의 지위를 잃어 지금은 태양계 제일 바깥 행성이 된 바로 그곳이다. 1977년 8월 지구를 떠났으니 12년 만이었다. 지구인은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 나를 우주로 보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이 해왕성 고리와의 충돌을 염려하며 지켜본 그날, 나는 해왕성에 4950km까지 접근했다.

해왕성은 목성이 받는 태양에너지의 3%밖에 받지 못하는 먼 곳에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역동적인 행성이었다. 남반구에는 목성의 거대 폭풍인 대적반과 비슷한 대흑점이 꿈틀거렸고, ‘스쿠터’라 불리는 하얀 반점이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모습도 보여 줬다.

누구보다 앞서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해왕성의 위성인 트리톤의 첫인상은 ‘스키장’이었다. 표면온도 섭씨 영하 235도. 지구인이 알고 있는 태양계 최저온도였다. 인간이 해왕성을 관측한 1846년 이후 아무도 존재를 몰랐던 위성 6개도 새로 발견해 줬다.

해왕성을 끝으로 12년간 날아온 길을 벗어나 더 먼 여행을 떠났다. 지구 출발이 나보다 16일 늦었던 쌍둥이 형제 보이저1호는 내가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탐사하는 동안 목성과 토성에 접근한 뒤 바로 태양계의 경계로 향했다. 우리가 발견한 것들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는 지구인에게 작은 열쇠가 될 것이다.

나는 지금 태양에서 약 125억 km, 1호는 155억 km 지점에 있다. 태양풍이 영향을 미치는 태양권의 안과 밖이다. 지구와 태양 간 거리(약 1억5000만 km)의 100배 정도 되는 길이다.

그리고 아직도 교신 중이다. 비록 광속의 신호가 지구에 도달하는 데 12시간이 걸리지만….

지구를 떠난 30년 동안의 여정(旅程). 느낀 것이 있다면 제아무리 특별한 존재인 양 뽐내더라도 인간은 지구 위에 사는 생물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자신을 가늠해 본다면 동감할 것이다. 그때 부디 우리 형제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추신=우리 몸체에는 외계 생명체를 만났을 때를 대비해 지구정보를 담은 ‘레코드’가 있다. 55개 언어의 인사말 중에는 한국인 여성이 녹음한 ‘안녕하세요’가 있다. 가장 먼 곳에 있는 한국말이다.

-인간에게 영감(靈感)을 주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보이저2호가.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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