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2004년 체첸반군, 러 초등교 인질극

  • 입력 2007년 9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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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일 오전, 평온했던 북(北)오세티야 공화국의 작은 도시 베슬란이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무장 괴한들이 초등학교를 기습해 1100여 명의 학생 교사 학부모를 인질로 잡은 것. 인질범들은 1994년 강제 합병 후 러시아 정부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던 체첸 반군 세력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체첸 반군 포로 30여 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휴가지 소치에서 급히 돌아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긴급 안보회의를 소집해 ‘반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특수부대 병력이 급파됐다. 3일 오후 1시 전격적으로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결과는 대규모 유혈참극. 어린이 186명을 비롯한 331명이 숨지고 783명이 부상당했다.

분명 사상 최악의 진압작전이었다. 어설픈 과잉 진압으로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더 큰 손실을 입은 쪽은 체첸 반군이다. 그들은 러시아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던 의도와는 달리 국제사회의 지지를 잃었다. 무고한 어린이들까지 볼모로 잡은 탓이다. 우방으로 여겼던 이슬람 국가들까지 비난 성명을 냈고 체첸 국민 사이에서의 지지율도 급락했다. 러시아에서 ‘강한 리더’ 푸틴의 인기는 되레 치솟았다.

이 같은 분위기를 업고 푸틴은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다”며 대대적 군사작전에 돌입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테러리즘 반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미국과 영국은 “테러리스트의 비인도성을 혐오하며 러시아 정부를 지지한다”는 성명으로 러시아의 강경 대응을 지지했다. 2005년과 2006년 아슬란 마스하도프 전 체첸 대통령과 샤밀 바사예프 등 반군의 두 기둥이 차례로 러시아 특수부대에 사살되면서 반군 세력은 급속도로 약화됐다.

돌이켜보면, 베슬란 진압은 어설픈 과잉 작전이 아니었다. 2001년 미국에 9·11테러가 터지자 가장 먼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해 위로와 지지를 표한 외국 정상이 바로 푸틴이다. 체첸 반군에 시달려 온 푸틴은 9·11 이슬람 테러와 체첸의 이슬람 테러를 즉각 연결시킬 수 있었다. 2004년 체첸 ‘테러리스트’들이 일으킨 인질 사건은 푸틴에게 ‘테러와의 전쟁’ 명분을 선사한 것과 다름없었다.

9·11테러 이후 안정을 원하는 민심을 타고 푸틴은 신속하고도 무자비하게 이들을 진압했다. 그리고 잇단 반(反)테러 조치를 통해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를 장악하고 강권 통치 체제인 푸티니즘(Putinism)을 굳혔다.

올해 3월 푸틴은 30세인 람잔 카디로프 체첸 총리를 러시아연방 내 체첸공화국 대통령에 임명했다. 그는 2004년 체첸 반군의 테러 공격을 받고 숨진 아흐마트 카디로프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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