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창치배는 대만의 갑부 잉창치 씨가 40만 달러의 파격적인 상금을 내걸고 개최한 세계대회로 잉 씨가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일본 초일류 기사에게 11연승을 거둔 녜 9단의 우승을 점치고 만들었다는 설이 나돌았다.
당시 한국은 세계대회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끼워 넣은 들러리 대접을 받았다. 주최 측은 한국 선수로 조훈현 조치훈 9단을 초청했다. 그러나 조치훈 9단이 일본기원 소속이어서 실질적인 한국 선수는 조훈현 9단뿐이었다. 한국기원은 항의했지만 ‘싫으면 참가하지 말라’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왔다.
혈혈단신으로 참가한 조 9단은 왕밍완, 고바야시 고이치, 린하이펑 9단을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 녜 9단과 만났다.
결승 5번기 진행도 불공정의 연속이었다. 주최 측은 당초 결승 5판을 모두 중국에서 두는 일정을 발표했다. 한국기원의 강력한 항의로 주최 측은 3판은 중국에서 두고 2판은 제3국인 싱가포르에서 두는 것으로 변경했다.
결승 1국은 조 9단의 승리였지만 2, 3국을 허망하게 내줬다. 녜 9단은 “중국인이 만든 대회에서 중국인이 우승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기염을 토했다.
모든 상황이 조 9단에게 불리했다. 주최 측은 싱가포르 대회에 동행할 한국 선수단으로 조 9단 외에 단 1명(윤기현 9단)만 초청했고 초읽기를 부르는 계시원도 중국 기사를 쓰는 등 횡포를 부렸다.
9월 2일 열린 4국. 중국 검토실이 녜 9단의 승리가 확실하다며 자축 분위기에 젖을 무렵 벼랑 끝에 매달린 조 9단이 한걸음씩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조 9단은 마침내 녜 9단의 발꿈치를 잡으며 1점(반집) 승을 거둬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5국을 앞두고 조 9단은 중압감과 스트레스로 인한 오한과 감기에 시달리는 등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승부욕만은 남달랐다.
그는 5일 최종국에서 철저히 실리를 취하며 앞서 나간 뒤 불리한 형세를 만회하고자 파고드는 녜 9단의 목줄을 단번에 잡아챘다. 조 9단이 흑 145를 두는 순간 녜 9단은 무겁게 고개를 떨어뜨리며 돌을 던졌다.
다음 날 김포공항에 도착한 조 9단은 수십 대의 카메라 플래시와 수백 명의 환영객에 묻혔다. 이어 공항에서 한국기원이 있는 서울 종로구 관철동까지 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조 9단의 잉창치배 우승은 2류라고 무시 받던 한국 바둑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결정적 계기였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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