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1년 냉동인간 미라 ‘외치’ 발견

  • 입력 2007년 9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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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65cm, 몸무게 38kg, 45세의 남성….’

내 이름은 ‘외치(¨Otzi)’다. 기원전 3300년경에 태어났다. 마흔다섯 살 무렵 현재의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국경 부근의 해발 3200m 알프스산맥 외츠탈 지역에서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숨을 거뒀다. 쓰러진 몸 위로 눈과 얼음이 세월의 무게만큼 쌓였다.

1991년 9월 19일 알프스 산맥을 등반하던 한 독일인 부부가 얼음과 눈 속에서 ‘냉동 미라’가 된 나와 마주쳤다.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면서 뼈와 누런 피부가 앙상한 상반신이 세상 밖으로 처음 드러난 것이다.

처음에는 조난당해 사망한 등산객으로 오인됐다. 하지만 5300여 년 전에 살았던 ‘유럽 최고(最古)의 미라’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외츠탈이라는 지명을 따서 ‘외치’라는 새로운 이름도 붙었다. ‘아이스 맨’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발견 직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로 옮겨졌다가 1998년 이탈리아 볼차노 지역의 남부 티롤 고고학박물관으로 인도됐다. 발견된 지역이 이탈리아 땅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잘 보존된 시신과 옷가지, 무기 등이 유럽인의 과거를 밝힐 실마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왜 알프스 산자락에서 쓰러져 냉동미라가 됐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죽기 8시간 전에 곡물과 순록 스테이크를 먹었고, 왼쪽 쇄골(鎖骨) 아래 동맥을 관통한 화살이 치명상을 입혔다는 분석도 있었다. 일부 연구팀은 화살로 인한 과다 출혈보다 머리 부상이 직접적인 사인(死因)이라고 주장했다.

전사했거나 범죄의 피해자, 종교적 의식의 희생양이라는 추론도 있었다. 가죽옷과 동(銅)으로 만든 도끼, 화살 등으로 무장한 것을 보고 샤먼이나 사회적 신분이 있는 계층일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과학자들이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매달리는 사이에 러시아 캐나다 그린란드 등 빙하와 만년설에서 ‘제2, 제3의 외치’가 발견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구가 점점 더워지는 것일까.

내가 정작 궁금한 것은 죽음에 얽힌 사연이 아니다. 적어도 5300여 년간 쌓여 있던 눈과 얼음이 갑자기 녹아내린 이유다. 지구가 나를 세상 밖으로 보내 전하려는 메시지는 뭘까.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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