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구호가 비행기를 만들 때도 사용됐다.
비행기의 이름은 B-29, ‘슈퍼 포트리스(superfortress·거대 요새)’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는 전략폭격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39년. 미국은 아직 전쟁에는 참가하지 않고 있었지만 일찌감치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 나는 폭격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유는 독일이 유럽에서 승리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전 유럽이 독일의 수중에 떨어지면 유럽 안에서 비행기를 띄울 수 있는 공항이 없어진다. 그래서 미 본토에서 유럽까지 멀리, 또 빨리 날아갈 수 있는 폭격기가 필요했다.
1942년 9월 21일. 보잉사(社)는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인근의 공군 기지에서 B-29의 처녀비행에 성공했다.
위용을 드러낸 B-29는 당시로선 여러모로 획기적인 비행기였다. 길이 30.2m, 너비 43.1m에 무게 47.6t의 B-29는 그때까지 나온 비행기 중 덩치가 가장 컸다. 1만 m 이상 고도에서 비행할 수 있었고, 본체 무게와 비슷한 양의 폭탄을 실을 수 있었다.
이 밖에 B-29는 미 폭격기 중 가장 먼저 레이더 폭격 시스템을 갖췄다. 중앙 화재조절 시스템과 리모트 컨트롤 기관총도 장착했다.
수차례 테스트를 거쳐 B-29가 실전 배치된 것은 1944년이었다. 주 임무는 일본 본토 공격. 남태평양 마리아나 제도에서 이륙한 B-29 편대는 수시로 도쿄를 비롯한 일본 주요 도시에 폭탄을 쏟아 부었다.
어떤 날은 1000여 대의 B-29가 도쿄 하늘을 까맣게 뒤덮기도 했다. 1945년 3월에는 B-29의 융단 폭격으로 하루에 8000명 이상이 숨졌다.
2차 대전 종전의 결정적 계기가 된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것도 B-29였다. B-29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사흘 뒤인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B-29는 6·25전쟁에도 참전했다. 6·25전쟁 3년간 B-29는 2만 번 이상 출격했고, 20만 t 이상의 폭탄을 한반도 곳곳에 뿌렸다.
4개의 프로펠러 엔진을 사용했던 B-29는 제트엔진 개발과 함께 폭격기로서의 수명을 다했다. 이후 공중급유기, 잠수함 수색기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 1960년 공식 퇴역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만들어진 B-29는 모두 3970대였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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