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담배만은 제발 피우지 마세요. 여러분이 지금 이 광고를 보고 있을 때 저는 이미 폐암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그해 10월 10일 브리너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 애절한 마지막 호소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죽음을 앞두고 뜻있는 일에 기꺼이 나섬으로써 팬들을 생각하는 진정한 스타로 존경받게 됐다.
1920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몽골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브리너는 온갖 어려움을 겪은 끝에 배우가 됐다. 어린 시절 중국과 프랑스 파리 등을 떠돌아다니며 제대로 된 학교 수업을 받지 못했고 13세 때부터는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서커스 곡예사와 유랑극단의 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미국을 여행하던 중 연기 공부를 본격적으로 한 뒤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1951년 뮤지컬 ‘왕과 나’에 출연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56년에는 영화 ‘왕과 나’에서 왕의 역할을 맡아 이국적인 분위기와 절제된 감성 연기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서 왕의 역을 하기 위해 삭발한 머리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스타가 된 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베트남전쟁이 발발했을 때 베트남 아이들을 입양하는 등 다양한 자선활동을 하던 그는 정작 좋아하던 담배로 몸을 망쳐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가 폐암으로 세상을 뜬 지 22년. 미국에서는 ‘금연 도시’까지 추진되고, 한국에서도 금연 건물에 금연 정류소, 금연 공원, 금연 아파트까지 나올 정도로 금연이 붐이다. 비흡연자의 간접흡연도 사회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인기 코미디언 이주일 씨도 폐암 말기이던 2002년 강력하게 금연을 호소한 뒤 세상을 떠나는 등 금연 캠페인이 줄을 잇고 있지만 ‘백해무익’하다는 담배는 아직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암이 흡연을 치료한다’는 외국 광고 문구가 있다. 율 브리너도 죽음을 앞두고서야 담배 피운 것을 후회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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