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메달을 목에 건 이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고개까지 푹 숙인 두 흑인 선수의 얼굴은 승자의 기쁨이 아닌 참담한 표정이다. 검은 장갑을 낀 채 한 손을 번쩍 치켜든 모습엔 비장함까지 서려 있다. 불끈 쥔 주먹이 무언가 말을 하는 듯하다.
이들이 전하려 한 무언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무대는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올림픽 대회였다. 이 대회 이틀째인 10월 17일 열린 200m 육상 경기에서 미국의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따냈다.
스포츠가 흑인들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당시, 꿈의 시상대에 오르게 된 두 사람은 운동화를 신지 않고 검은 양말 차림으로 시상대에 섰다. 목에는 검은 스카프를 둘렀다. 그리고 미국 국가가 울리자 검은 장갑을 낀 한 손을 높게 쳐들었다.
이 세리머니는 미국 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침묵시위였다. 흑인인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된 지 여섯 달 남짓한 시점이었다.
두 선수는 흑인들의 가난을 대변하기 위해 운동화를 신지 않았고, 흑인들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목에 검은 스카프를 둘렀다. 그리고 스미스는 미국 내 흑인들의 힘을 상징하는 오른손을, 칼로스는 흑인들의 단결을 호소하는 왼손을 치켜들었다.
스미스는 이날 세리머니에 대해 “우승 덕분에 난 흑인이 아닌 미국인이 됐지만, 내가 이기지 못했다면 ‘검둥이(negro)’가 되고 말았을 것”이라며 “흑인들은 우리의 행동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사회는 이들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즉각 성명을 내고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폭력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두 선수는 메달을 빼앗기고 올림픽 선수촌에서도 쫓겨났다.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난 여론에 시달렸고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전한 메시지의 힘은 컸다. 흑인들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웅변한 무언의 몸짓에 미국 사회는 동요했다. 결국 이날의 ‘정치적’ 세리머니는 196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쓴 흑인해방운동 ‘블랙파워(black power)’의 상징이 됐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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