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은 기미독립선언서에서 한국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선언했다. 첫머리에 언급한 비장한 호소도 독립선언서의 일부다. 그러나 기미독립선언서는 아니다.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 유학생들이 선포한 2·8독립선언문일까. 그것도 아니다.
여성들이 주도한 독립선언서가 1919년 작성됐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슬프고 억울하다”며 비통한 심정으로 시작되는 이 글은 바로 대한독립여자선언서(大韓獨立女子宣言書)다.
이 선언서는 1983년 11월 3일 도산 안창호 선생 장녀인 안수산 씨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집에서 뒤늦게 발견됐다. 한지(가로 49cm, 세로 31cm)에 붓으로 1350자를 써 내려갔다. 선언서 끝에 단기 4252년(서기 1919년) 2월과 김인종 김숙경 김옥경 고순경 김숙원 최영자 박봉희 이정숙 등 작성자 8명의 이름을 분명히 밝혔다.
3·1운동 즈음 국내외서 선포된 독립선언서 중 발견된 것만 20종이 넘지만 여성이 주도한 독립선언서는 이 선언서가 유일하다. 다른 선언서는 국한문 혼용체나 순한문으로 썼지만 이 선언서만은 순 한글로 썼다.
1일 위암 장지연상을 받은 대표적 한국 여성사 연구자인 박용옥 전 성신여대 교수는 이 선언서가 중국 지린(吉林) 성에서 작성됐으며 작성자는 근대 교육을 받은 기독교계 젊은 여성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여성도 상무(尙武) 정신으로 남자들과 함께 독립투쟁의 대열에 나서야 하며 여성의 역량은 용기와 고매한 지식을 가진 영웅호걸을 능가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이 선언문은 독립운동 당시 여성의 역할을 짐작게 한다.
박 전 교수는 3·1운동이야말로 남녀 성차를 완전히 극복해 하나로 단결된 민족운동이라 평한다. 여성들은 방방곡곡 시위에서 용기 있고 위대한 민족지도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3·1운동의 주역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은 유관순 열사 정도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고 믿는 분들께 도쿄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서를 준비하며 독립사상 고취 웅변대회 열었을 때 여자친목회 회원 황에스터(1892∼1971)가 남긴 말을 전한다.
“여러분! 국가의 대사를 남자들만이 하겠다는 겁니까? 수레바퀴는 혼자서 달리지 못합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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