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하이오 주 데이턴의 초원을 질주하던 복엽기(複葉機) 한 대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1903년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기 ‘플라이어 1호’를 제작한 라이트 형제의 신형 비행기 ‘모델 B’였다.
조종사는 스물세 살의 필립 파맬리. 추위를 피하기 위해 두꺼운 코트에 바지를 몇 겹씩 껴입고 고글과 목도리, 모직 모자까지 푹 눌러 쓴 그는 영락없는 ‘미라’의 모습이었다.
뒷좌석에는 ‘귀한 손님’이 있었다. 200파운드(약 90.7kg)의 비단 꾸러미가 주인공. 비행기로 실어 나른 세계 최초의 ‘항공화물’이었다. 운송료는 5000달러. 당시 비행기 한 대 값이 5000∼7500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무척 큰돈이었다.
오전 11시 51분 데이턴에서 105km 떨어진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상공에 까만 점처럼 보이는 물체가 나타났다. 지도와 철길 등 지형을 번갈아 보며 66분간 시계비행(視界飛行)으로 날아온 파맬리의 ‘모델 B’였다.
착륙 장소에 모인 3000여 명의 관람객 입에서는 “이렇게까지 오래 살 줄 몰랐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하이오역사학회가 펴낸 ‘오하이오 역사’는 세계 첫 항공화물 운송 시대의 개막을 이렇게 적고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진 비단은 자동차에 실려 콜럼버스의 유통업체인 모어하우스 마르텐스의 매장으로 옮겨졌다. 비행기와 자동차가 결합한 현대식 물류의 시작이었다. 비단 중 일부는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 기념품으로 팔렸다.
“큐피드의 날개로 조종되며 향기가 나는 휘발유로 움직이는 분홍 장밋빛 비행기가 ‘러브레터’를 배달할 것이다.”
라이트 형제의 성공 이전까지 항공 우편은 ‘큐피드의 화살’에 비유될 정도로 황당한 아이디어 취급을 받았다.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19세기 과학 패러다임으로 볼 때 비행기는 서커스처럼 신기한 눈요깃거리이지, 실생활에 쓰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라이트 형제는 과거를 버리고 미래를 상상했다. 비행기가 군사용 정찰기로 쓰이고, 화물과 여객 운송용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포츠에도 비행기가 사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들의 ‘황당한 꿈’은 현실이 됐고, 역사가 됐다. ‘창조의 패러다임’이 미래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현재를 바꾸기 위해 미래에서 툭 튀어나온 영화 속의 ‘터미네이터’처럼.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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