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 한국 사회를 휩쓴 때였다. 그해 10월 19일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차명계좌에 예치된 4000억 원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사건은 11월 16일 노 전 대통령이 특정 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는 사태로 번졌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등 재벌총수 8명을 포함한 기업인 35명은 뇌물 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계도 뒤숭숭하던 때였다.
그로부터 1년 2개월이 지난 1996년 2월 7일 그해 첫 이사회에서 전경련은 기업윤리헌장을 확정했다. 기업윤리헌장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 공정이윤 획득, 공정 경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 환경친화적 경영, 지역사회 발전 기여 등의 내용을 담았다. 최근 회자되는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기업’의 역할이 대부분 담겼다.
전경련의 기업윤리헌장은 1999년 2월 11일 더욱 강화돼 발표된다. 그해 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뇌물방지협약 발효에 발맞춘 조치였다.
새 기업윤리헌장에는 정치권 및 정부와 건전하고 투명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조항이 명시됐다. 그때까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던 ‘기업윤리위원회’를 매년 4회 이상 개최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건전한 정경관계를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같은 날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이 외화 밀반출 혐의로 긴급 체포돼 재계의 자율 정화 노력은 빛이 바랜다.
전경련의 기업윤리헌장 제정 이후 개별 기업의 윤리헌장 발표가 잇따랐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개별 기업의 윤리헌장 보유 비율은 2000년 21.8%에서 2007년 93.5%로 크게 늘었다. 윤리경영 담당 부서를 운영하는 곳도 97.5%(2007년 기준)에 달한다.
하지만 우리 기업의 윤리경영은 ‘앞으로 잘하겠다’는 선언적 이미지가 강하다. 윤리경영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회·경제적 시스템 마련은 상대적으로 더디다.
기업과 개인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윤리경영이 꼭 필요하다. 개인의 삶은 소중한 직장에 크게 의존하기에.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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