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 런던 시민의 석탄 사용량이 급증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데다 지면 근처의 대기 온도가 상층보다 낮은 기온역전 현상이 일어나면서 굴뚝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는 지면 부근에 그대로 머물렀다.
매연(smoke)과 안개(fog)가 합쳐진 스모그(smog)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시내를 두껍게 뒤덮었다. 런던 스모그 사건의 시작이었다. 템스 강에서는 증기선이 정박해 있던 배를 들이받았다. 기차와 자동차가 충돌 사고를 일으켰다. 길 잃은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을 따라 집을 찾아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짙은 안개에 익숙한 런던 시민들은 스포츠 경기 취소 여부에만 관심을 쏟았다. 그러는 사이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장의사의 관, 꽃집의 장례용 화환이 품절됐다. 병실 복도는 들것에 누운 환자들로 가득 찼다. 가축 전시회에 나온 소들이 혀를 빼물고 쓰러졌다. 연기 속에 있던 아황산가스가 황산으로 변해 생명체의 호흡기에 치명상을 입힌 것이다.
엿새 뒤 바람이 불어 스모그를 몰아낼 때까지 런던에서는 호흡기 장애로 4000여 명이 사망했다. 그 뒤 만성 폐질환으로 8000여 명의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20세기 최대의 환경 재난에 정부도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정부는 “독감 때문”이라는 엉뚱한 진단과 함께 마스크 300만 개를 배포했을 뿐이다.
1953년 5월에야 엔지니어이자 기네스북 창시자인 휴 비버 경이 이끄는 ‘비버 위원회’가 구성돼 실태 조사에 나섰다. 위원회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대기정화법이 제정되기까지는 다시 3년이 걸렸다.
런던 스모그 참사가 예고 없이 들이닥치진 않았다. 이전에도 안개와 석탄으로 인한 대기오염 피해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대책이 필요하다는 경고음은 ‘경제가 먼저’라는 목소리에 묻혔다.
1930년대에 이미 벨기에 뫼즈 강 계곡에서 스모그 때문에 수십 명이 죽은 뒤 “런던 같은 대도시라면 일주일 만에 4000명 넘게 죽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이 역시 무시됐다.
온실가스 감축협약인 교토의정서(2012년 만료)의 후속 대책을 논의하는 협약 당사국 총회가 3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막했다. 이번 회의가 기후 변화라는 인간이 만든 환경 재앙을 막아낼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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