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2월 7일 토요일 아침은 서민들의 시름으로 가득했다. 동아일보는 이날의 우울한 풍경을 이같이 전했다.
이날 정부는 국제수지 개선과 경기 회복을 이유로 달러당 원화 환율을 400원에서 480원으로 20% 올리고(원화 가치는 하락) 석유류 31.3%, 전기요금 42.4%를 인상하는 내용의 ‘12·7 경기대책 특별조치’를 발표했다. 수출을 늘리고 원유 등 수입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세계 경제는 1973년 10월 중동전쟁으로 촉발된 제1차 석유파동의 늪에서 시름하고 있었다. 수출 주도 경제성장에 나선 한국 경제도 타격을 입었다. 1974년 하반기(7∼12월)에 들어서면서 유가가 다소 안정세를 보이자 정부는 침체된 수출을 살리기 위한 ‘환율 인상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남덕우 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환율 인상으로 물가는 10∼11% 상승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1975년 수출액이 당초 예상인 56억 달러에서 60억 달러로 늘어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정부의 조치에 서민들은 당황했다. 목욕탕과 음식점 주인들은 연료비 부담 때문에 문을 닫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서울 남대문시장의 암달러상들은 전날 팔아치운 달러가 아까워 땅을 쳤다. 주부를 그만두겠다는 ‘주부 사퇴서’라는 말까지 나왔다.
정부는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 인상을 막기 위해 통화량을 억제하고 설탕 간장 고무신 등 공산품 58개 가격을 통제하는 가격승인제를 도입하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서울 시내 백화점에서는 설탕과 밀가루 값이 뛰어올랐고, 사재기를 피하기 위해 1인당 판매량을 제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로부터 33년이 흐른 올해 한국 경제는 무역규모 70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세계 11위 무역 대국으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원화가치는 상승)한 덕분에 올해 1인당 국민소득(GDP)도 2만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업계는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채산성 악화를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해외의 경제 석학들은 한국 기업이 지금이야말로 ‘진짜 실력’을 보여 줄 때라고 지적한다. 양적 성장에 걸맞은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 정부와 기업이 서민들에게 진 빚을 되갚는 길이 아닐까.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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