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족, 오스만튀르크, 몽골에 이어 러시아까지 시대별로 주변 강대국들은 이 지역을 끊임없이 건드렸다.
현재 체첸을 지배하는 러시아와의 악연은 18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첸은 남하 정책을 펼친 제정러시아에 점령당했다. 체첸의 ‘대(對)러시아 항쟁사’가 시작된 것이다.
체첸은 잠시 자주권을 회복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옛 소련 시절인 1940년대 초반에는 인구 대부분이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로 추방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독립 기회를 엿보던 체첸은 소련이 붕괴되던 1991년, 혼란기를 틈타 러시아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가만히 두고 볼 러시아가 아니었다.
1994년 11월 25일.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반정부군이 체첸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형식상으론 내전이었지만 실제로는 독립을 원하는 체첸과 러시아의 충돌이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처음엔 전투 중단을 촉구하는 정도의 경고에 그쳤다. 그러다 태도가 돌변했다. 12월 9일 크렘린 대변인은 “옐친 대통령이 체첸공화국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불법 무장세력에 대한 무력 사용을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이틀 뒤인 11일 오전 5시. 러시아 군대가 체첸 영토로 진격했다. 전투는 이듬해까지 이어졌지만 군사력의 차이로 오래 가지는 않았다. 1995년 1월 19일 러시아군은 체첸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하지만 게릴라식 공격과 자살 공격으로 맞서는 체첸군의 저항 탓에 완전한 진압을 하지 못한 러시아는 1996년 8월 체첸 지도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물론 체첸의 분리독립 문제는 논외로 했다.
1999년 8월에는 체첸 반군이 이웃 다게스탄공화국 국경을 침범함으로써 제2차 체첸 전쟁이 일어났다. 러시아는 한층 더 강력한 대응으로 체첸을 초토화했다.
그 후, 전사(戰士) 기질이 다분한 체첸인들의 저항은 테러 형태로 계속됐다. 2002년 모스크바 인민궁전극장 인질 사건, 2004년 북오세티야공화국 내 베슬란의 초등학교 점거 사건 등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1차 체첸 전쟁 당시 옐친 대통령이 강하게 대응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다른 공화국들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고, 체첸의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러시아는 최근 옛 소련 위성국가들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다시 힘을 쓰고 있다. 게다가 국제 유가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러시아가 체첸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더욱 커지고 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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