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칸딘스키는 어릴 때부터 음악과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피아노와 첼로를 능숙하게 연주했고 그림에도 상당한 실력을 보였다. ‘색채에도 생명이 있다’ ‘미술은 곧 음악’이라는 그의 이론은 이때 접한 자유로운 음악과 미술 교육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모스크바대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27세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늘 비잔틴 교회의 다양한 건축양식과 미술작품에 머물렀다.
1895년 인상파 화가 전시회에서 모네의 그림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그는 한 대학의 교수 초빙을 거절하고 그림을 배우기 위해 무작정 독일로 건너갔다.
유명 화가들이 운영하는 사립학교와 미술아카데미에서 4년간 그림을 공부한 그는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야수파 등 당시의 다양한 미술 사조를 접목해 자신만의 화풍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외교관과 과학자, 몽골의 왕자를 합쳐 놓은” 외모의 그는 그림 또한 강렬한 색조에 아시아권의 이국적 분위기, 러시아풍의 민족예술 등을 결합한 작품 성향을 보이며 서서히 명성을 쌓아 나갔다.
그가 ‘순수한 추상’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거꾸로 걸린 자신의 그림을 보면서부터다. 거꾸로 걸린 그림도 색과 형태만으로 의미와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발견한 그는 색과 선, 형태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순수한 시각언어’를 찾는 데 몰두했다.
“위로 솟는 선은 빠르고 경쾌한 리듬, 부드럽고 완만한 선은 느리고 조용한 리듬, 색조는 음색, 색상은 가락, 채도는 음의 크기다.”
1944년 12월 13일 죽음을 맞을 때까지 그는 시대를 앞선 색채 이론가이자 뛰어난 교육자요 위대한 화가였다. 최초의 추상 수채화라 불리는 ‘무제’부터 ‘콤퍼지션 7’ ‘즉흥 14’ ‘가을’ 등 그의 대표작들은 모두 색채와 형태만으로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던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의 그림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림을 보려 하지 말고 그 속에 담긴 선율을 음미해 보라.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이고, 때론 잔잔한 리듬 속에서 옛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을 테니.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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