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체육관이 준공 한 달여 뒤인 1963년 2월 1일 개관함으로써 농구 배구 권투 탁구 배드민턴 등이 주야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열리게 됐다. 프로레슬링도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는데 김일과 장영철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1966년 사상 최초의 한국인 세계 복싱 챔피언 김기수가 탄생한 곳도 여기였다. 김기수는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인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를 홈으로 불러들여 타이틀을 빼앗았다. 1979년 4월 잠실체육관이 들어설 때까지 장충체육관은 한국 실내 스포츠의 유일한 메카로 군림했다.
장충체육관은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정치 행사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로 권력을 연장했고 군부를 동원해 권력을 잡은 전두환 씨도 1980년 일명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됐다.
지방자치단체까지 너도나도 체육관을 짓는 최근에 들어선 장충체육관의 스포츠적 가치는 떨어지고 있다. 최근엔 스포츠 행사보다는 각종 이벤트성 행사가 열리고 있다. 마당놀이 쾌걸 박씨가 22일까지 개최됐고 31일 밤엔 혼성그룹 클래지콰이 콘서트가 열린다. 알뜰마당이나 패션 할인 판매의 장이 되기도 한다.
올해 한국 스포츠는 아마 야구의 산실인 동대문구장을 잃었다. 1959년 8월 개장돼 아마 야구의 메카로 자리 잡은 동대문구장이 개발 논리에 밀려 허물어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선 언제부턴가 스포츠 행사보다는 콘서트나 마당놀이가 열리는 장충체육관이 헐릴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동대문구장을 잃은 뒤 많은 체육인은 한국 스포츠의 역사를 잃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장충체육관도 한국 체육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역사적 건축물이다. 지금부터라도 그 가치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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