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네시 주에 사는 친척집에 놀러갔다 윌리엄 브래드퍼드 로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그는 유치원 교사로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둘은 사귄 지 1년 반 만인 1902년 결혼했고 와이오밍 주 샤이엔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잘나가는 변호사였던 남편 로스는 와이오밍 주지사 선거에 도전해 수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1922년 당선됐다. 민주당 후보로서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에서 이룬 힘든 승리였다.
그러나 그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924년 맹장 수술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민주당은 정치 경험이 없는 부인 로스 여사를 보궐선거 후보로 내세웠다. 인기 있던 주지사의 부인이니 동정표를 얻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미국사상 처음으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주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성 주지사를 배출하자’는 선거 전략이 먹혀들 것이라는 기대도 한몫을 했다.
로스 여사는 1924년 11월 4일 경쟁자를 여유 있게 제치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같은 날 텍사스에서도 주지사 선거가 실시돼 여성 후보 미리엄 퍼거슨 여사가 당선됐지만 로스 여사가 16일 더 빠른 이듬해 1월 5일 취임하면서 ‘미 최초의 여성 주지사’ 기록을 갖게 됐다.
주지사로서 로스 여사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남편의 정책을 이어 받아 세금 감면과 저소득층 보호, 은행 개혁, 어린이와 여성 근로자 보호법 제정에 힘썼다.
그럼에도 그는 1926년 재선 도전에서 근소한 표차로 실패했다. 남자들처럼 다음 자리를 위해 정치적으로 뛰지 않고 주지사 일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게 훗날의 분석이다.
그가 주지사라는 금녀(禁女)의 영역에 첫발을 내디딘 지 8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는 유능한 여성 정치인들의 약진 속에 최초의 여성 대선 후보까지 나섰다.
로스 여사가 주지사 후보가 된 배경처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유력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까지는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힘이 컸다. 그러나 주지사의 부인이라는 이유로 로스 여사를 당선시켰던 민심은 오늘날 변화한 듯하다. 오히려 경륜을 내세우는 힐러리에 대해 “경륜이라고 해봤자 빌 클린턴과 결혼한 경험밖에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 가운데 선두를 달리던 힐러리 의원이 3일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선 3위로 뒤처졌다. 그가 8일 열리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이를 만회하고 미국 정치사에 또 다른 기록을 남기게 될지 주목된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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