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중반, 동양의 앞선 문물을 알려 유럽에 충격을 안겼던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1324년 1월 8일 세상을 떠났다.
1271년 17세 때 아버지 니콜로 폴로와 숙부 마페오를 따라 원나라 대도(大都·지금의 베이징)에 도착한 그는 황제 쿠빌라이 칸의 특사로 17년간 광활한 중국 대륙을 구석구석 다니며 진기한 경험을 했다.
‘동방견문록’으로 더 유명한 ‘세계 경이의 서’는 베네치아로 돌아온 그가 제노바와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제노바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만들어진 책이다. 마르코 폴로가 구술하고 감방 동료인 작가 루스티첼로가 쓰는 형식으로 집필됐다.
‘불타는 돌’(석탄)’ ‘거북의 등껍질로 씌운 볼록렌즈’(안경) ‘종이로 만든 돈’(지폐) 등 마르코 폴로가 소개한 동양의 물건들은 너무나 앞서 있었고 신기했기에 당시 유럽인들은 ‘허풍’으로 평가 절하했다. 그 말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그가 죽고 170여 년이 지난 뒤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인도로 가는 항해로를 발견한 뒤였다.
최근 음식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마르코 폴로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중국 음식을 이탈리아에 소개하면서 이탈리아 음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것이다. 스파게티는 그가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가져간 국수와 남미에서 건너 온 토마토를 이탈리아 조리법으로 결합한 음식이고, 아이스크림은 중국 베이징 사람들이 즐기던 얼린 우유를 만드는 법을 베네치아에 소개한 이래 북부 이탈리아로 확산됐다. 최근에는 애피타이저(전채요리)도 마르코 폴로가 중국의 냉채 요리를 모방해 즐기던 요리가 프랑스로 건너가 바뀐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마르코 폴로가 전한 기록의 신빙성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마르코 폴로가 실제로 현지 여행을 한 게 아니라, 페르시아에서 동방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상상을 덧붙였다는 것이다.
‘동방견문록’에 만리장성 전족 한자 등 서양인의 시각에서 흥미를 가질 만한 사실이 빠져 있다는 점과 일부 도시에 대해서는 여행담이 없고 단순히 규모와 지배 구조만 서술돼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마르코 폴로는 이런 의혹을 짐작이라도 한 것일까. 그가 남긴 유언은 “내가 본 것의 절반도 말하지 못했다”였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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