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방문 중이던 한 국회의원이 그곳의 고궁박물관에서 고선지 장군이 에베레스트를 넘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다음 날(20일자) 일부 신문은 ‘에베레스트의 첫 정복자는 고구려인’이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박물관에 있던 ‘당서열전(唐書列傳)’ 제54장에는 당 현종 때 고선지 장군이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정벌하기 위해 원정 중 군인들이 높은 성모산(聖母山) 때문에 진군을 기피하는 것을 보고 직접 선발대를 이끌고 성모산을 정복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성모산은 에베레스트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이들 신문은 밝혔다.
그러나 고선지 장군이 넘은 곳은 에베레스트가 아니라 파미르 고원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고선지 장군은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중국 대륙을 활개치고 다닌 ‘대륙의 별’이었다.
동아시아의 패자였던 고구려는 668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멸망하고 고구려인 20만 명은 중국으로 끌려간다. 그들의 후손이었던 고선지가 세계 제국이던 당의 장수가 돼 실크로드의 지배자로 등극한 것이다.
풍채가 늠름하고 말 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던 그는 20세에 장군이 돼 그 전에 당나라가 세 차례나 실패한 서역 정벌의 임무를 맡는다. 그는 네 차례의 서역 정벌(740∼750년)에 성공해 당나라와 지중해를 잇는 실크로드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1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세계의 지붕이라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 70개국 이상을 정복한다. 원정 길 중 가장 높은 고도는 4600m나 되었다. 유럽의 역사가들이 18세기 나폴레옹의 알프스 등정보다 더 위대한 전사(戰史)로 평가하는 업적이다.
그는 세계 역사의 한가운데 있었다. 751년에 7만 명의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이슬람 아바스 왕조를 주축으로 한 사라센 연합군 30만 명과 벌인 탈라스 전투에서는 패하는데 당시 포로로 잡힌 당나라 군사들이 제지술, 화약 제조술, 나침반 등을 서역에 전하게 된다.
고선지는 755년 안녹산의 난 때 장안(長安)을 수비하다 조정의 참소(讒訴)로 진중에서 처형된다. 그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긴 부하들의 “원통하다”는 외침이 천지를 진동했다.
“고선지는 한민족의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고선지 평전’을 쓴 연세대 사학과 지배선 교수의 말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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