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4단이 최고위전을 차지하며 조 9단의 아성을 처음으로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1980년대 조 9단은 무적함대였다. 그는 3차례나 모든 타이틀을 휩쓰는 전관왕을 기록했다. 동갑인 서봉수 9단이 가끔 반란에 성공했지만 중원을 호령하는 지존은 조 9단이었다. 조 9단보다 10년 안쪽의 어린 후배에선 그를 당할 자가 없었다. 조 9단의 시대가 최소한 20년은 갈 것이라고 했다.
조훈현 왕국의 균열은 내제자 이창호로부터 시작됐다. 수줍고 말 없던 이 소년은 1986년 입단해 3년 만인 1989년 최고위전 패왕전 국수전 등 3개의 도전권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경험 부족으로 조 9단에게 전패하며 쓴맛을 봐야 했다. 조 9단은 그해 말 상금 40만 달러의 응씨배에서 극적으로 우승하면서 왕국의 영광을 더욱 높였다.
그러나 1990년 벽두부터 시작된 최고위전 도전기에서 이 4단은 ‘조훈현을 넘기엔 최소 5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뜨리며 3승 2패로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 4단의 첫 타이틀이 최고위라는 것도 공교로웠다. 조 9단이 17년 전인 1973년 처음 차지한 타이틀도 최고위전이었던 것.
이때부터 ‘이창호의 신화’가 시작됐다. 1인자 조 9단을 한 번 넘은 이 4단 앞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해 이 4단은 최연소로 국수위를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1인자에 올랐고 바둑계의 기록을 하나씩 갈아 치웠다.
1990년 이후 17년 만인 2007년. 이 9단은 슬럼프에 빠지며 1인자 자리를 이세돌 9단에게 넘겨줬다. 승부는 돌고 도는 것. 영원한 승자는 없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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