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자 선교사 곁에 있던 신여성이 입을 연다.
“이게 베이스볼이라는 겁니다. 지금 베이스볼을 하게 되면 조선 최초가 됩니다.”
조선 최초의 야구팀을 소재로 만든 영화 ‘YMCA야구단’의 한 장면이다. 영화 속 배경은 100년 전 개화기.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도 야구는 100여 년 전 미국인 필립 질레트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그는 1901년 YMCA세계본부가 조선에 파견한 선교사였다.
애초 그는 야구를 전파할 생각이 아니었다. 선교사들이 즐기던 캐치볼에 조선 청년들이 관심을 보이자 선교의 일환으로 가르친 게 시작이었다.
질레트는 1905년 미국에서 배트와 글러브 등 야구 장비를 들여와 YMCA 회원에게 정식 야구를 선보였다.
“운동복은 무명 고의적삼에 짚새기를 매어 신었다. 배트를 둘러메고 볼을 친 것은 사실이나 외야수는 글러브 맛을 좀처럼 보지 못하였고 맨손으로 볼을 받았으며 배트는 자기편과 상대편이 돌려가면서 쳤다.”(이길용 저 ‘조선야구사’ 중에서)
야구의 인기는 대단했다. YMCA 임시회관으로 사용하던 인사동 태화관 앞의 공터는 공을 던져 보겠다고 몰려드는 짚신 발의 청년으로 연일 북적였다고 한다.
YMCA에서 시작한 야구는 덕어(德語·독일어)학교, 영어학교, 일어학교 등 외국어학교를 중심으로 번졌다.
1년여 만에 경기가 벌어졌다. 1906년 2월 11일 동대문 근처의 훈련원에서 황성YMCA야구단과 덕어학교가 맞붙었다.
덕어학교가 3점차로 승리했다. 이 경기는 한국 최초의 야구 경기로 기록돼 있다.
질레트는 1910년 YMCA 본부에 보낸 ‘코리아리포트’에서 “이 나라 젊은이들이 운동경기를 통해 진취적이고 새로운 이상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야구는 일제 침략으로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시기에 청년들의 의기를 북돋아 줬다.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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