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훈련병 316명이 이순신 장군의 위패가 봉안된 통영 충렬사를 참배한 뒤 해군 YTL 수송정을 타고 모함으로 돌아오던 중 풍랑으로 배가 전복되면서 159명이 숨진 것. 배는 모함을 겨우 200m 앞두고 3m 높이의 파도에 귀로가 막혔다.
바다에 빠진 훈련병들은 눈앞에 보이는 모함을 향해 헤엄쳐 갔으나 물에 젖은 겨울 군복과 전투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귀한 목숨을 잃었다.
오전 6시 반에 출발한 YTL함은 1시간 전에 내려진 폭풍주의보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맑다는 이유로 운항을 강행했다. 그러나 4시간 만에 ‘예고’된 돌풍을 만났다. 6·25전쟁 때 건조돼 심하게 낡은 이 배는 파도를 맞아 뒤집어진 지 5분 만에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췄다.
생존자들은 “배 아래쪽 갑판에 200명이 넘는 신병들이 콩나물시루처럼 꽉 끼인 채 쪼그리고 있었다”며 눈물을 쏟았다.
진해 해군훈련소 면회실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는 울음바다였다. 그런 가운데 일반 신병에 대한 면회도 허용돼 웃지도 울지도 못할 희비극이 연출되기도 했다.
충북 청원에서 먼 길을 오느라 사고 소식을 듣지 못한 한 할머니는 찹쌀떡 보따리를 머리에 인 채 “아들을 벌써 만나보았느냐”고 물으며 유족들 사이를 누볐다. 할머니는 가족들의 울음이 상봉의 기쁜 눈물인 줄로 잘못 알았던 것. 한 아버지는 면회장 입구에 붙은 사망자 명단을 면회 순서로 착각하고 담당 장교에게 아들에게 쓴 편지를 내밀며 “면회 순서를 좀 봐 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그날의 비극은 34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20일 육군 항공대대 소속 UH-1H 헬기가 응급환자를 이송한 뒤 돌아오다 경기 양평군 용문산 능선에 추락해 7명의 장병이 귀한 목숨을 잃었다. 헬기는 도입된 지 40년이 넘은 낡은 기종이었다. 칠흑 같은 한밤중인 데다 용문산엔 농무가 끼어 10m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조사됐다.
군인들의 목숨을 담보로 노후 기종이 버젓이 사용되고, 기상조건은 군인정신으로 돌파하는 관행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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