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들은 ‘검은 것이 아름답다’는 슬로건 밑에서 하나가 됐다.
‘백인과 대등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면 폭력도 불사해야 한다’는 거친 주장들이 억눌리고 찌든 흑인 젊은이들의 심장을 달궜다.
그해 여름 워싱턴 조지타운대 정치학과에 재학 중이던 한 백인 청년이 흑인 활동가를 찾았다. 미국의 제42대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이었다.
‘그들의 해결책에는 동조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가진 불만의 뿌리에 있는 문제들은 진짜라고 느꼈다.’(빌 클린턴의 자서전 ‘마이 라이프’)
대규모 흑인 폭동을 경험한 미국 사회는 다급해졌다.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1967년 일리노이 주지사 오토 커너를 위원장으로 하는 ‘사회 무질서 대책 국가자문위원회(커너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미국은 두 개의 사회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하나는 흑인사회, 하나는 백인사회다. 두 사회는 분리되어 있고 불평등하다.”
1968년 2월 29일 커너위원회의 보고서가 공개되자 백인 주류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커너위원회가 흑인 소요의 주범으로 흑인 급진주의자의 조직적인 공모가 아닌 백인사회의 인종주의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경찰의 인종 차별적인 대응과 경제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흑인들의 억눌린 욕구가 공격성으로 표출됐다는 것.
커너위원회는 3년 동안 2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인종 차별을 철폐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과 연수 기금을 마련할 것을 제안하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이 제안이 모두 실현되지는 않았다. 흑백 갈등도 여전하다. 하지만 커너위원회의 문제 제기는 미국 사회가 흑인과 저소득층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게 만드는 전환점이 됐다.
올해 미국은 또 다른 ‘블랙 파워의 시험대’에 올랐다.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도전장을 냈다. 1967년 여름 ‘블랙 파워’의 실체를 목격했던 빌 클린턴의 부인인 힐러리와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경합 중이다.
2008년 미국인은 어떤 선택을 할까. 결과 못지않게 선거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국 사회의 기류 변화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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