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6년 서울대생 2명 분신

  • 입력 2008년 4월 28일 02시 59분


1980년대 대학생들은 1학년 때 경기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에 있는 문무대(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1주일 동안 군사훈련을 받았다. 2학년이 되면 군사분계선에 위치한 최전방 부대에서 1주일간 병영체험을 하는 ‘전방입소’ 교육이 있었다. 국방부는 필수과목인 교련을 이수하고 문무대 교육과 전방입소 교육을 마친 대학생에게 군 복무기간을 3개월 줄여줬다.

1986년 4월 16일 서울대에서 ‘전방입소 훈련거부 및 한반도 미핵 기지화 결사저지를 위한 특별위원회’가 발족됐다. 이들은 전방입소를 하루 앞둔 2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서울대 의대도서관을 점거해 장기간 농성을 벌이기로 한다.

하지만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경찰은 화염병 296개와 시위용품 29가지를 들고 서울대 의대도서관으로 들어가려던 서울대생 106명 등 총 123명을 연행했다.

경찰의 봉쇄작전으로 투쟁 계획이 물거품이 되자 다음 날인 28일 오전 9시 30분부터 400여 명의 학생은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신림사거리에서 기습 연좌시위를 벌인다. 시위 학생들은 “전방입소는 미제(美帝)의 용병교육”이라고 주장하면서 ‘반전반핵 양키고홈’ ‘미 제국주의 축출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 도중 신림사거리의 서광빌딩 3층 옥상에서 서울대생 2명이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서울대 반전반핵평화옹호투쟁위원장인 이재호(정치학과 4년) 군과 전날 서울대 의대 점거농성을 주도한 서울대 자연대 학생회장 김세진(미생물학과 4년) 군이었다. 김 군은 5월 5일, 그리고 이 군은 같은 달 28일 숨을 거둔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대체로 알고 있는 ‘벗이여 해방이 온다’는 이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노래라고 한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 통치’ 아래에서 이 군과 김 군의 분신(焚身)은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감안할 때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으로 봐야 할 측면도 있다. 다만 그들의 격렬한 반미(反美) 주장에 공감할 수 있느냐는 것은 시각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22년이 지난 지금 대학가는 많이 달라졌다.

대학생 운동권조직인 한총련은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의장을 뽑지 못할 정도다. 학생들의 가장 큰 관심은 ‘일자리 찾기’로 바뀌었다. 돌이켜 보면 극우 군사독재정권과 이에 대항하는 논리로 사회 일각에서 철 지난 극좌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한 1980년대의 운동권 학생들 역시 ‘시대의 희생자’였는지도 모른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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