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땅에 왕국이 생긴 것을 보고 주변 국가들이 그냥 둘 리 없었다. 걸프 지역의 패권을 노리던 오스만제국이 쿠웨이트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쿠웨이트는 그 힘에 밀려 1829년 오스만제국에 종주권을 내주고 1852년엔 보호국이 되어 오스만제국 바스라지역에 편입되었다.
19세기 말 쿠웨이트에 내분이 일어났다. 사바 족은 자신의 세력 유지를 위해 영국과 손을 잡고 영국의 보호국이 됐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쿠웨이트는 또 한 번의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건 석유 때문이었다. 아라비아반도에 대규모 유전이 있음이 확인되면서 쿠웨이트는 열강들의 침탈 대상이 되었다.
영국은 쿠웨이트의 종주국임을 내세워 유전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20세기 강국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쿠웨이트의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영국과 미국의 신경전이 치열했다. 그 결과 1934년 양국은 공동으로 쿠웨이트 석유회사(KOC)를 설립했다.
1950년대 들어 중동 지역엔 민족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집트는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했고 이라크는 친(親)영국 왕정을 무너뜨렸다. 쿠웨이트에도 민족주의 열풍이 몰아쳤고 결국 1961년 6월 19일 독립을 얻어냈다.
그러나 쿠웨이트의 독립은 예상치 못했던 문제를 야기했다. 이라크와의 국경 분쟁이었다.
이라크는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을 때, 쿠웨이트가 편입됐던 바스라 지역이 원래 이라크 땅이었다”면서 쿠웨이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라크는 쿠웨이트 독립 며칠 뒤 국경에 병력을 배치하는 등 무력시위를 벌였다. 다행히 이라크 정권이 바뀌면서 무력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1970년대 영국군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면서 힘의 공백이 생기자 이라크는 또다시 쿠웨이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 이후 이를 둘러싸고 양국간 수차례의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등 국경 분쟁은 계속됐다. 1990년 걸프전으로 국경 분쟁은 일단락됐으나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쿠웨이트의 독립과 함께 찾아온 이라크와의 국경 분쟁. 열강에 의한 식민통치의 폐해인 셈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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