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데텐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독일의 압력에 영국과 프랑스가 동맹국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의 3분의 1을 내주는 일방적인 양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날은 영국과 프랑스 외교의 승리로 비쳤다.
그날 런던과 파리로 돌아간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분노한 시위대의 물결을 예상했던 달라디에는 환호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측근에게 “멍청이들!”이라고 말했다.
단순하고 낙천적인 체임벌인은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군중을 향해 종이 조각을 높이 흔들며 평화를 알렸다. “국민 여러분, 독일로부터 명예로운 평화를 가지고 귀국했습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잠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반면 엄청난 승리를 거두고도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은 침울했다. 특히 체임벌린이 자동차로 뮌헨 거리를 지나는 동안 주민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분노는 더 커졌다. 히틀러는 이 승리를 너무 비싼 값을 치르고 얻은 것처럼 여겼다.
히틀러는 당장 프라하로 쳐들어가려던 자신의 계획을 당분간 중단해야 한다는, 그래서 정복자로서의 승리를 도둑맞았다는 생각에 신경질이 났다. 그는 측근에게 “체임벌린, 그놈이 내가 프라하로 진군하는 것을 망쳤어”라고 성을 냈다.(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
뮌헨협정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며칠 뒤 영국 하원에서 나왔다. 윈스턴 처칠은 “우리는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패배를 했다. …우리가 자유를 위해 다시 일어서지 않는 한 이것은 앞으로 마셔야 할 쓰디쓴 잔의 첫 모금일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어진 체코슬로바키아는 결국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독일의 무력 압박에 완전히 백기를 들고 말았다. 히틀러는 프라하에 무혈 입성한 뒤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로써 존재하기를 멈췄다”고 선언했다.
실패한 유화(appeasement)정책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뮌헨협정은 ‘뮌헨의 배신’ ‘뮌헨의 비굴’로 기록된다. 히틀러는 1년 뒤 폴란드 점령을 앞두고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적들은 작은 벌레에 불과하다. (뮌헨에서처럼) 그놈들이 다시 막판에 중재안을 내밀까 걱정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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