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9년 美증시 ‘검은 목요일’

  • 입력 2008년 10월 24일 02시 56분


“주가는 영원히 높은 고원처럼 보이는 곳에 도달했다.”

미국 예일대의 첫 번째 경제학 박사로 미국이 낳은 최고의 경제학자로 불린 어빙 피셔. 1929년 미국 경제의 장밋빛 미래를 낙관한 그는 이렇게 공언했다.

그의 말에 대부분의 미국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1920년대 미국 경제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1921년 이후 8년 동안 주가는 계속 올라갔다. 제너럴모터스의 주가는 치솟았고 골드만삭스와 같은 투자신탁회사가 월스트리트에 앞 다퉈 등장했다.

1921년 8월 24일 63.9였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929년 3월 9일 6배 가까이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인 381.17에 올라섰다.

멈출 줄 모르는 주가 상승은 사람들을 주식시장으로 모여 들게 했고 수십만 명의 미국인은 재산의 대부분을 주저 없이 주식에 투자했다. 상당수 미국인은 주식을 사기 위해 은행과 증권회사로부터 돈을 빌렸다. 투기 광풍은 결국 경제 거품으로 이어졌다.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의 대폭락이 시작됐다. 다우존스지수는 이날 20% 이상 하락해 299.47까지 떨어졌다. 이날 하루 동안 거래된 주식은 종전 하루 최대 거래량인 400만 주의 3배가 넘는 1290만 주였다.

시카고와 버펄로주식거래소는 낮 12시 반에 아예 문을 닫아 버렸다.

오후 1시 월스트리트의 주식 중개인들이 여러 상장사의 주식을 높은 가격에 매입하는 데 합의하면서 그나마 폭락세는 멈췄다.

하지만 이미 11명의 주식 투자자가 자살한 뒤였다. 피셔의 공언은 공언(空言)이 되어 버렸다. 피셔는 명예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그 자신도 사업을 통해 번 전 재산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었다.

검은 목요일의 공포에도 주식을 팔지 않았던 그는 결국 며칠 뒤 계속 이어진 ‘검은 월요일’과 또 한 번의 ‘검은 목요일’을 거치면서 거의 모든 재산을 잃었다. 그가 잃은 재산은 1000만 달러로 추산됐다.

주가는 1930년 초 회복되는 듯했지만 1930년 말 다시 폭락세가 이어지며 결국 1932년 대공황으로 빠져 들어갔다.

당시 증권시장 붕괴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투기 만연, 부채를 창출할 수밖에 없는 지주회사와 투자신탁회사의 확신, 청산이 불가능한 대규모 은행대부의 증가 등을 꼽았다.

79년이 지난 요즘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말들이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