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7년 日만화작가 이케다 출생

  • 입력 2008년 12월 18일 03시 00분


1973년 일본의 한 여고 교실. 수업 중 한 여학생이 고개를 파묻고 훌쩍이기 시작하자 같은 학급의 모든 학생이 잇달아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선생님이 이유를 묻자 학생이 울먹이며 답했다. “오스카가 죽었어요.”

여류 만화가 이케다 리요코 씨가 1972년부터 만화잡지 마거릿에 연재한 ‘베르사유의 장미’가 82주 만에 비극적으로 끝을 맺자 당시 일본의 여학생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1755년 유럽의 서로 다른 세 나라에서 장차 프랑스의 베르사유에서 숙명적으로 해후할 세 아이가 태어났다.” 만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합스부르크 공국의 여제(女帝)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홉 번째 딸인 마리 앙투아네트, 대대로 프랑스 왕실 근위대에서 복무한 군인 집안의 막내딸 오스카 프랑수아, 스웨덴 상원의원의 장남 페르젠 등 3명이 주인공이다.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가 될 프랑스의 황태자와 15세 때 정략 결혼해 베르사유에 온다. 아들이 없어 집안의 전통이 끊어질까 우려한 아버지 때문에 검술을 배우며 군인으로 성장한 오스카는 남장 여인으로 궁정 수비대장이 된다.

음모가 판치는 궁정 생활에 환멸을 느낀 앙투아네트는 페르젠과 불륜에 빠지고, 그녀의 사치와 방종은 프랑스혁명에 불을 붙인다. 책임감과 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던 오스카는 결국 혁명군에 합류해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하다 총에 맞아 숨진다. 앙투아네트가 1793년 10월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며 만화는 끝난다.

1947년 12월 18일 오사카에서 태어난 이케다 씨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만화계의 비주류로 갓 싹트기 시작한 소녀만화(순정만화)는 베르사유의 장미와 뒤이어 나온 ‘캔디, 캔디’(1975년, 이가라시 유미코 작)의 인기에 힘입어 일본 한국 등에만 존재하는 만화 장르로 자리를 굳혔다.

연재가 끝난 뒤 단행본으로 묶인 만화는 1200만 부가 팔렸다. 일본 내 대학의 불문과에는 지원자가 몰렸고, 베르사유 궁은 일본 관광객의 인기 관광코스로 떠올랐다. 모든 배역을 여성이 맡는 일본의 다카라즈카 극단이 1974년에 만화를 가극으로 만들어 큰 인기를 누렸고, 1978년에는 영화 ‘쉘부르의 우산’의 감독인 자크 드미가 ‘레이디 오스카’란 제목으로 영화로도 제작했다.

1970, 80년대 한국의 많은 여학생은 이 만화를 통해 순정만화에 입문했다. 러시아혁명을 배경으로 한 같은 작가의 ‘올훼스의 창’도 여학생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작품.

이케다 씨는 40대 후반의 나이일 때 음대에 다닌 뒤 성악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용사마’ 배용준의 팬이어서 최근에는 한국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만화로 그렸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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