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2월 23일 낮 박정희 대통령이 백두진 국회의장에게 보낸 공개서한 중 일부다.
박 대통령은 서한에서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국회에 제안한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도록 협조할 것을 촉구했다.
백 의장은 앞서 22일 오후 9시 의장 직권으로 이 법안을 해당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했다. 신민당은 긴급 의원총회와 원내대책회의를 열고 특별조치법을 본회의 보고 발의를 거치지 않고 법사위에 회부한 것은 불법이라며 법안의 국회통과를 저지하기로 했다. 백 의장에 대해선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 법은 박정희 대통령이 같은 해 12월 6일 선언한 ‘국가 비상사태’를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법이 공포되면 대통령은 국방과 경제 언론에 대해 강력한 ‘비상 대권(大權)’을 갖게 된다.
법안 처리는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이뤄졌다.
공화당은 같은 달 27일 오전 3시를 D데이로 잡고 법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국회의사당이 신민당 의원들에 의해 점거 당하자 본관 건너편의 제4별관에 있는 외무위원회 회의실에서 법사위와 본회의를 연이어 여당 단독으로 열고 통과시켰다.
본회의 사회를 맡은 백 의장은 법안을 상정하면서 “질의와 토론을 생략하겠으니 통과시키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앞서 열린 법사위에서도 토론 없이 그대로 통과됐다.
법사위는 오전 3시부터 3시 1분까지 1분 동안 열렸고, 본회의는 3시 1분부터 3시 3분경까지 2분 동안 열렸다. 본회의엔 공화당 소속 의원 111명과 무소속 2명 등 113명이 참석했다.
백 의장은 이날 오전 2시에 김현옥 내무장관에게 공한을 보내 국회 주변의 질서 유지를 요청해 수많은 경찰관이 국회 주변에 배치됐다. 법안이 통과될 당시 신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과 제2, 제3, 제4별관에서 농성 중이었다.
신민당 이기택, 최형우, 노승환, 신상우 의원 등이 날치기 통과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상황은 이미 끝난 뒤였다. 일부 젊은 의원들은 국회의장실에 들어가 유리창을 깨고 책상을 부수며 화분을 뒤엎기도 했다.
37년 전 독재정권 시절에 벌어진 국회의 대치상황은 지금과 비슷한 점이 너무 많은 듯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당의 강행처리에 대항하는 야당의 투쟁수단이 한층 과격해졌다는 점이라고 할까.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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