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8년 영화배우 최은희 납북

  • 입력 2009년 1월 14일 03시 02분


배우 최은희가 ‘증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1978년 1월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안양영화예술학교와 자매결연하자는 제의를 받고 홍콩으로 건너갔다. 당시 안면이 없던 이로부터 연락이 왔지만 그는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 생각해 선뜻 응했다. 홍콩에서 그 관계자는 “사장이 출장 중이니 일주일간 관광을 하며 기다리라”고 했다.

최은희는 1월 14일 오후 바닷가를 거닐다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됐고 배편으로 황해도 해주까지 끌려갔다. 공작원이 말했다. “최 선생, 우리는 지금 장군님의 품으로 갑니다.”

그는 “바다에 뛰어내리고 싶었다. 울고 소리 지르면 주사를 놓아 잠재웠다”고 훗날 털어놓았다. 북한에 도착한 뒤에도 그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다 잠드는 날이 많았다.

한국에 있는 신상옥 감독에게도 전갈이 갔다. 부인이 실종됐으니 급히 홍콩으로 오라는 것. 그는 최은희의 행방을 찾아 전전하다 같은 해 7월 14일 홍콩에 입국했고 5일 만에 납북됐다.

최은희는 매주 금요일 평양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해 영화를 봤다. 연회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의로 노래를 하다가 신 감독 생각에 눈물을 흘리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는 기록도 있다.(‘Mr. 김정일’·마이클 브린 한반도 전문가)

영화와 연극에 광적이었던 김 위원장은 영화산업에 주력했으나 결과가 신통치 않자 이들을 납치할 것을 명령했다. 희생양이 된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세우고 체제선전 영화를 만들었다. 1983∼86년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 등 17편의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1986년 3월 신상옥 최은희가 북한을 탈출했다는 소식이 일본 교도통신을 통해 한국에 전해졌다.

이들은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한 뒤 프랑스 파리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에 머무르고 있었다. 감시의 눈을 따돌리고 미국 대사관으로 들어가자 대사관 직원은 장미 한 송이를 내밀며 반겼다. “Welcome to the west.” 최은희는 울음을 터뜨렸다.

이들은 미국에서 체류하다 1989년 5월 11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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