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1월 20일 낮 12시 워싱턴 의사당 동쪽 현관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두 번째 취임선서를 했다.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서 승리한 그는 1월에 취임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이전까지 대통령 취임일은 3월 4일이었다.
이는 수정헌법 20조에 따른 것. 1933년 발효된 수정헌법 20조는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만 4년이 되는 해의 1월 20일 낮 12시에 끝나며 후임자의 임기는 그때부터 시작된다고 규정했다.
취임식 날짜를 3월 4일에서 1월 20일로 앞당긴 것은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는 대통령 당선인과 사실상의 모든 권력을 잃은 레임덕 현직 대통령이 공존하는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11월 대선부터 3월 취임까지 정권인수 기간이 4개월이나 된 것은 별다른 통신·교통수단이 없던 건국 초기의 유산이었다. 새 당선자의 소식이 오지에 전달되기까지, 당선인이 마차를 타고 수도 워싱턴에 도착하기까지 수십 일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보와 열차가 생긴 이래 4개월은 너무 길었다. 특히 국가가 혼란에 빠졌을 때 이처럼 긴 정권교체 기간은 국가를 더욱 깊은 위기 국면으로 빠뜨리는 위험한 시기가 됐다.
미국 역사상 제임스 뷰캐넌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으로, 허버트 후버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로의 정권교체는 가장 위험한 순간으로 기록됐다. 링컨의 취임과 함께 남북전쟁이 발발했고 루스벨트가 취임할 때는 대공황이 정점으로 치달았다.
처음 후버를 누르고 처음 당선된 루스벨트는 취임일까지 기다릴 수 없어 후버를 조기에 물러나게 하는 조기 집권 계획까지 세웠다. 비록 이 계획은 무산됐지만 그는 취임 직후 100일 동안 수많은 급진적인 개혁 법안을 통과시켜 ‘뉴딜정책’을 추진했다.
한때 “당신은 공산주의자입니까”라는 질문까지 받았지만 개혁 정책을 펴면서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변정담’이라 불린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역사상 초유의 4선을 기록했다.
오늘 취임하는 버락 오바마가 직면한 경제위기는 70여 년 전 루스벨트 취임 당시의 대공황 상황과 닮은꼴이다. 루스벨트는 첫 취임사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며 미국인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오바마가 던질 첫 희망의 메시지가 궁금하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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