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1월 31일, 미국 하원 회의장은 방청석과 의원석 모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회의장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도 수백 명이나 됐다.
스카일러 콜팩스 하원의장이 표결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일어서는 순간 의원석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찬성표가 수정안 통과에 필요한 3분의 2에서 두세 표 모자라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콜팩스 의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헌법 수정안에 대해 찬성 119표, 반대 56표가 나왔습니다. 3분의 2가 찬성했습니다. 수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빼곡하게 모여든 청중은 격한 감정에 목이 메는 듯했다. 잠시 후 미국 의회에서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노예제 폐지를 담은 수정헌법 13조가 하원에서 통과되는 순간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가슴은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자신의 위업인 노예해방선언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본보 1월 1일자 A23면 참조
[책갈피 속의 오늘]1863년 링컨 노예해방 선언
링컨은 오래전부터 남북전쟁이 끝나면 노예해방선언이 폐기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1864년에도 헌법 수정안이 상원을 통과했지만 하원에서는 민주당이 주정부의 권리를 내세우며 반대해 결국 폐기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링컨은 재선에 성공하자마자 연두교서를 통해 의회에 수정안을 다시 표결에 부쳐달라고 호소했다. 공화당이 상하원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새로 구성될 의회에서는 수정안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링컨은 새 의회가 출범하기 전에 공화당과 민주당이 초당적으로 수정안을 통과시키면 더없이 좋을 것으로 여겼다. 링컨은 민주당 온건파 하원의원들을 집무실에 한 명씩 초대해 설득 작업을 벌였다.
그는 표결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고래를 몰고 온 고래잡이 어부와 같다. 마침내 거대한 고래에 작살을 꽂았지만 이를 어떻게 끌고 갈지 고민해야 하며, 고래가 꼬리를 휘둘러 우리 모두를 몰살시키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한다.”
노심초사(勞心焦思) 끝에 얻은 승리에 링컨은 흥분하지 않았다. 다음 날 밤, 링컨은 백악관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번 일은 온 나라와 온 세계가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 주의회의 비준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1865년이 지나기 전에 대부분의 주의회가 이를 비준함으로써 미국에서 노예제는 폐지됐다. 하지만 노예제 폐지는 인종차별 철폐 역사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로부터 140여 년 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링컨이 삽을 뜬 역사가 이제 마무리 단계에 온 듯하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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