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2년 취업 지도교수 추천제 추진

  • 입력 2009년 2월 5일 02시 45분


전두환 정권의 대학졸업정원제 실시로 1980년대 초반 대학가는 학생으로 넘쳐 났다. 입학생을 졸업 정원보다 30%가량 더 뽑은 뒤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을 중도에 탈락시켜 대학 캠퍼스에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정책이었다. 대학이 연일 시위로 시끄럽자 내놓은 특단의 조치였다.

선진국처럼 대학 입학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서도 졸업장은 자격이 되는 사람에게만 주겠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신입생 정원이 늘어나다 보니 대형 강의실은 미어터졌다. 정원이 불어난 법대, 상대, 공대 같은 경우는 반을 나누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 무렵 문교부는 각 대학에 ‘지도교수제’가 제대로 정착되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70년대부터 대학에 지도교수제는 도입됐지만 데모 학생들을 관리하는 수준이었다.

1982년 2월 대학교수들은 1인당 적게는 20명에서 많게는 60명에 이르는 학생을 배정받아 지도를 맡았다. 지도교수들에게는 매달 2만, 3만 원의 지도비가 주어졌으며 교수들은 매달 한 번씩 지도결과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당시 지도교수제는 유명무실했다. 졸업정원제 실시로 신입생이 대폭 늘어나면서 교수와 학생은 전통적인 사제지간(師弟之間)의 끈끈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지도교수와의 면담 일정이 공고되기는 했지만 굳이 상담하러 교수연구실을 찾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교수들도 시큰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장학금신청서를 들고 가는 학생을 귀찮아하면서 “조교한테 내 도장을 받아 가라”고 무성의하게 답변하는 교수도 적지 않았다. 지도교수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대학 4년을 보내고 졸업하는 경우도 있었다. 4년 동안 지도교수와 대화를 한 차례도 나누지 않은 학생도 적지 않았다. 1980년대 대학교수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교수들도 학생 상담을 과외 일로 여기고 학생들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자기가 맡은 학생 가운데 교내 데모에 연루된 학생만 없기를 바라는 교수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의 고민이나 진로 상담을 할 수 있는 교수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도교수제가 이처럼 겉돌자 정부는 1982년 2월 5일 앞으로 공무원이나 국영기업체 금융회사에 신규 채용을 할 때 교수 추천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두환 정부의 전인(全人)교육 차원에서 마련된 이 방안은 학생의 학업성적뿐 아니라 행동발달상황과 학교생활 내용까지도 평가해 지도교수가 추천하면 신규 채용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지도교수 추천제도가 있었지만 정해진 양식에 교수 도장을 찍어오는 것에 불과했다. 말로는 전인교육을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데모 학생들의 취업을 어렵게 하기 위한 속내가 더 짙어 보였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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