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10대와 20대 여성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얼마 안 돼 그 수는 3000명을 넘어섰다. 공항이 문을 연 뒤 가장 많은 손님이었다. 그러나 비행기 탑승권을 갖고 있는 여성은 없었다.
이들은 활주로가 보이는 공항 건물에서 영국에서 오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기다리는 비행기가 착륙했고, 더벅머리 청년 4명이 트랩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술렁이던 여성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1964년 2월 7일. ‘록의 전설’ 비틀스의 첫 미국 방문은 이렇게 시작됐다.
광란하는 팬들을 간신히 뚫고 공항을 빠져나온 비틀스는 숙소인 뉴욕 플라자호텔 앞에서 다시 팬들에게 감금(?)됐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했지만 팬들의 뜨거운 열기에 조지 해리슨은 다음 날 39도까지 치솟는 고열에 시달려야 했다.
이틀 뒤 비틀스는 당시 최고의 인기 TV 프로그램인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해 8일 전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른 자신들의 노래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I Want to Hold Your Hand)’를 불렀다. 그러나 노래는 방청석을 점령한 팬들의 환호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당시 미국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7400만 명이 비틀스의 노래를 듣기 위해 TV 앞에 앉았다.
다시 이틀 뒤 비틀스는 워싱턴DC 콜리시엄에서 팬 2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첫 미국 콘서트를 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뉴욕으로 다시 건너와 카네기홀에서 2회 연속 공연을 했다. 카네기홀 공연 때는 경찰이 팬들의 광란을 우려해 건물 주변의 거리를 일시 폐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공은 비틀스 자신들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1963년 개인적으로 미국을 방문한 해리슨은 레코드 가게를 찾아갔다. 미국 음반회사를 통해 출시한 자신들의 노래에 대한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래는커녕 비틀스라는 그룹 이름도 모른다는 참혹한 답변만 들었다.
해리슨의 이 끔직한 경험담은 멤버 모두에게 미국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게 했다.
미국 내 첫 콘서트를 2만 명 정도 수용하는 소규모(?) 공연장으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시 존 레넌의 말이 재미있다.
“그저 미국에 가면 최소한 듣고 싶은 음악은 들을 수 있다는 게 즐거웠습니다. 이토록 엄청나게 성공할 줄은 몰랐습니다. 막상 미국에 도착하자 우리는 놀라자빠졌습니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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