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다3131호 그라나다 승용차가 서울 동교동 김대중 씨 집에 도착했다. 김영삼 씨는 김덕룡 비서실장과 함께 차에서 내려 동교동 DJ 자택을 찾았다.
대문을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민주화 동지들이 박수를 치면서 YS를 환영했다. 응접실에선 이미 취재진 100여 명이 꽉 들어차 있었다.
YS는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DJ를 만나 굳은 악수를 나눴다. 두 사람은 30분 동안 환담하고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취재진 앞에서 10분 동안이나 악수와 포옹을 하면서 포즈를 취했다. YS와 DJ의 만남은 1980년 ‘5월의 봄’으로 불린 5월 16일 이후 약 5년 만이었다.
YS와 DJ가 이처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전두환 대통령이 이날 오전 10시를 기해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3김씨에 대한 연금을 풀어줬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은 1988년 6월 30일까지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던 14명을 모두 해금(解禁)했다. 이들은 1980년 11월 24일 정치활동 금지가 확정된 567명 중 핵심인물이었다.
그동안 세 차례 해금조치가 있었지만 전 대통령은 3김씨를 포함해 이후락 전 대통령비서실장, 오치성 전 내무부 장관, 김상현 김명윤 구 신민당 의원, 김덕룡 민추협 운영위원(YS 비서실장) 등 14명은 정치 활동을 못 하도록 묶어놓았다.
하지만 군사정권도 민의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1985년 2·12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민정당은 간신히 과반 의석을 넘겼다. 총선을 불과 20일 앞두고 3차 해금자 중심으로 창당한 신한민주당은 주요 대도시에서 압승을 거둬 국민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
이날 새벽 4시 반경에는 DJ 집에서 30m 떨어진 길가에 설치돼 있던 높이 4m, 길이 20m의 녹색 장막이 철거됐다. 건축용 철재에 천을 씌워 만든 이 장막은 DJ 자택을 사람들이 쳐다보지 못하도록 경찰이 쳐놓은 것이었다. DJ 집 부근 11곳에 설치돼 있던 경비초소도 마포경찰서 전경들이 이날 철거했다. YS의 상도동 집 주변에서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막아오던 경찰 200여 명도 모두 철수했다.
이날 두 사람의 회견 요지는 민주화 투쟁과정에서는 물론 민주화가 달성된 후에도 협력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987년 12월 대선에서 두 사람은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채 함께 출마했다가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한다. YS는 1993년에 대통령을 하고 뒤이어 1998년에는 DJ도 대권을 거머쥐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불편한 앙숙 관계로 남아 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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