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1년 어느 날 밤 음악의 도시 빈에 있는 귀족의 저택. 서재에 홀로 앉은 궁정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옆방에서 흘러드는 세레나데에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고 신(神)을 향해 울부짖는다. 방금 전 이 방에 숨어들어 애인과 킬킬거리며 음탕한 사랑 놀음을 하던 애송이가 저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다니….
자신이 그토록 갈구하던 천재성을 신은 버릇없고 경박한 볼프강 아마데우스(라틴어로 ‘신이 사랑하는 자’라는 뜻) 모차르트에게 줘버렸다. 자신의 몫은 범상한 재능이요, 더 가혹한 것은 천재가 빚은 ‘신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얹어줬다는 사실이다.
살리에리는 신을 원망하며 지위를 이용해 집요하게 복수를 꾀하고 파멸의 끝에 몰린 모차르트는 1791년 35세로 요절한다. 그로부터 32년 뒤. 늙은 살리에리는 자살을 시도하기 전 모든 죄과를 털어놓으며 외친다. “나야말로 모든 평범한 자들의 신성한 수호자다.”
영국의 극작가 피터 섀퍼는 젊은 날 한때 남다른 천재이길 꿈꾸지만 결국 자신의 평범함을 깨닫고 좌절하는 보통 사람들의 심정을 희곡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의 입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했다.
1979년 11월 런던 올리비에 극장에 처음 올려진 이 연극은 섀퍼에게 큰 성공을 안겨줬다. 18세기 말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분위기와 모차르트의 감동적 선율이 가득한 밀로시 포르만 감독의 영화로 이 작품은 더 유명해졌다. 영화를 위해 희곡을 직접 각색한 섀퍼는 1985년 3월 25일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1926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난 섀퍼는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해 역사를 공부한 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서점 직원 등으로 일하며 쌍둥이 형제 앤서니와 함께 소설, 방송 극본 등을 썼다. 첫 희곡은 1958년에 발표한 ‘5중주’였지만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작품은 1973년 초연된 ‘에쿠우스’(라틴어로 ‘말’이라는 뜻)였다. 여섯 마리 말의 눈을 쇠꼬챙이로 찔러 멀게 한 17세 소년의 이야기로 섀퍼는 토니상, 뉴욕비평가상을 휩쓸었다.
에쿠우스는 한국 연극계의 역사를 바꾼 작품이다. 극단 실험극장은 1975년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전용 소극장을 마련하면서 개막작으로 에쿠우스를 골랐다.
주인공 앨런 역을 맡은 강태기의 열연과 충격적인 시각효과, 선정성 논란을 부른 마구간 정사장면 등이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국내 연극사상 처음 관객 1만 명 돌파, 6개월 연속공연의 기록을 남겼다. 이 공연의 성공은 1970년대 소극장 운동에 불을 붙였고, 앨런 역을 맡았던 송승환 최재성 최민식 조재현 등은 모두 스타 연기자로 떠올랐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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