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철권 통치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그는 사냥감을 추적하는 사냥꾼과 같은 끈기를 지닌 냉정하면서도 타산적인 군인이었다. 프랑코에게 군대는 유일한 국가기관이었다. 오랜 역사를 지녔고 비정치적이며 부패하지 않은 공평무사한 실체였다.
그는 정치라면 어떤 형태든 증오했다. “스페인인은 정치와 정치가들에게 질렸다. 정치로 먹고산 사람들만 우리의 행동을 두려워 할 것이다.” 1936년 7월 스페인내전이 일어나자마자 모로코에서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그가 우익 파시즘 추종자라서가 아니었다.
그에게 보수주의자는 반동적이고 이기적인 지주였고, 자유주의자는 부패하고 이기적인 장사꾼이었다. 사회주의자는 망상에 빠진 사람들이거나 그보다 더 나빴다. 프랑코는 결코 유토피아나 특정 제도 따위에 환상을 품고 있지도 않았다.
사실 스페인내전은 선악의 투쟁이 아니라 총체적인 비극 그 자체였다. 거리의 깡패나 다름없던 청년세력을 동원한 타락한 좌익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익은 서로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잔혹행위를 저질렀다.
내전은 소련의 공산주의와 독일 이탈리아의 파시즘 간의 국제적 대리전 양상을 띤 정치적 전쟁이 됐지만 프랑코에겐 오직 군사적 전쟁일 따름이었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지원하는 항공기와 탱크, 무기들을 이용했을 뿐 어떤 지시도 받지 않았고 환심을 사려 하지도 않았다.
공화파의 마지막 아성이었던 마드리드의 지도자들이 평화협상을 벌이려 했지만 프랑코는 단호히 거부했다. 1939년 3월 28일 마침내 공화파가 백기를 올리고 프랑코 군대가 마드리드에 입성했을 때, 프랑코는 전쟁이 끝났다는 말을 듣고도 책상에서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2년 8개월의 피비린내 나는 스페인내전이 끝났지만 그에겐 어떤 동요도 없었다. 그는 공산주의 세력의 박멸을 통해 전쟁과 정치를 마저 끝낼 생각이었다. 이미 내전 동안 100만 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전후 수만 명이 약식재판을 받고 처형당했다.
스페인내전이 끝나던 날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1934년 체결한 독일과 폴란드의 불가침조약을 파기한다고 선언했다. 한 주 전에 이미 체코슬로바키아 전역을 점령한 히틀러는 서서히 유럽을 전쟁으로 이끌며 프랑코를 동맹으로 얻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프랑코는 히틀러가 벌인 전쟁에는 철저히 선을 그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선언하고 스페인을 유럽에서 분리시키려 했다. 프랑코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유럽을 휘몰아친 전쟁의 소용돌이로부터 스페인을 어느 정도 보호하는 데는 성공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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