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3월 30일 오후 2시 25분(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의 힐턴호텔 앞.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곳에서 열린 미국노동총동맹산별회의(AFL-CIO)에 참석해 연설을 마치고 나와 대통령 전용차에 오르고 있었다.
환호하던 군중을 향해 손을 들어 흔드는 순간 총성 6번이 잇달아 울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졌고 바닥은 피로 물들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가슴에 총탄을 맞았다. 레이건 대통령을 수행하던 제임스 브래디 백악관 대변인을 비롯해 경호원과 경찰이 총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레이건 대통령은 곧바로 조지워싱턴대 병원으로 옮겨졌다.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존 워크노 힝클리라는 25세의 청년이었다. 그는 대부호의 아들로 부랑아처럼 지냈고 정신병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저격 동기가 너무 어이없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를 짝사랑해 오던 힝클리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힝클리는 포스터가 출연한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한 장면을 흉내 내 레이건 대통령을 저격한 것이다.
힝클리는 범행을 저지르기에 앞서 포스터에게 최후의 편지 한 통을 썼다. ‘부디 마음을 돌려 달라. 내가 이 역사적 행위를 통해 당신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후 재판부는 힝클리의 암살 미수를 정신병에 의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두 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천만다행으로 탄환이 심장에서 12cm 떨어진 왼쪽 폐에 박혀 성공리에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유머 가득한 말을 남겨 화제가 됐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부인 낸시 여사에게 “여보. 내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잊었구려”라고 말했다.
수술실에 들어온 의사들을 향해선 “당신들이 공화당원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총에 맞고도 죽지 않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라고 얘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긍정적인 생각 덕분이었는지 레이건 대통령은 70세의 고령임에도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해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총탄을 맞은 지 불과 12일 만이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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