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들의 참사 소식은 언론에 크게 보도됐고 경기 이천소방서 산하 양평군 청운파견소에서 근무하는 박병철 소방교(48·사진)는 안타까운 마음에 TV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때 박 소방교의 눈에 비친 한 유가족이 있었다. 갓 걸음마를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오열하고 있는 고 박상욱 소방장의 부인. 한참이 지나도록 이 유가족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던 박 소방교는 같은 해 7월경 아이를 위해 매달 4만7000원씩 들어가는 5년 만기 적금통장을 만들었다.
적금통장은 한 달 뒤 이름도 모르는 박 소방장의 부인에게 전달됐고 박 소방교는 이들을 위해 3년이 넘도록 빠짐없이 적금을 붓고 있다.
박 소방교가 돕는 순직 소방관의 유가족은 이들이 처음이 아니다. 1996년 11월 9일 ‘소방의 날’ 행사에 참석한 그는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경기 고양소방서 박모 소방관의 유가족을 만났다. 3, 4세쯤 돼 보이는 고인의 아들은 행사장을 가득 메운 소방관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아빠’를 연방 외쳐댔다.
“그 모습이 얼마나 눈에 밟히던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까’를 몇 달 동안 고민하다 결국 적금통장을 만들었습니다.”
그 뒤 순직 소방관 소식을 접할 때마다 어린 자녀가 있는 유가족을 위해 적금통장을 만들기 시작한 박 소방교는 7년 가까이 매달 20여만원씩 이들을 위해 적금을 붓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라며 멋쩍어하지만 이 금액은 그가 받는 수당의 40%다.
지금까지 적금을 수령했거나 매달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유가족은 모두 다섯 가족. 처음에는 자신의 가족들에게까지 비밀로 했다는 박 소방교는 수당이 너무 빨리 떨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부인에게 4년 전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박 소방교는 “이제 정년이 10년 남았는데 그 때까지 가능하면 더 많은 유가족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양평=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