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이 천사]50회 시리즈 주인공들의 2004년

  • 입력 2004년 12월 24일 18시 14분



‘선행은…?’

“돈이 없어 외로운 것보다 같이 나누는 마음이 없어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됩니다.”(허정희 씨·본보 6월 5일자 보도)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보물이며 ‘나누는 마음’이기도 합니다.”(한노라 씨·5월 1일자)

“결국 자신이 먹고 사는 우물물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죠.”(김종환 씨·8월 7일자)

2004년도 어김없이 저물어간다.

올 한 해 우리 국민은 여러 가지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정치인들이 ‘밥그릇 싸움’에 열중하는 동안 불황 속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로또 대박’의 꿈을 꿨다. 각종 비리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20여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희대의 살인마도 생겨났다.

그런 우울한 뉴스 속에서도 한 해 동안 본보 사회부 기자들은 묵묵히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100여 명의 ‘천사’들을 만났다. 연말에만 반짝 등장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생활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후광 없는 천사’요, 사시사철 활동하는 ‘연중(年中) 산타’였다.

본보는 그런 천사들을 찾아 지난 1년간 매주 토요일자에 소개했다. 천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가게를 찾는 노숙자들에게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도넛을 공짜로 나눠주는 ‘사랑의 빵집’ 노부부(11월 27일자), 환자들의 아픔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중환자들에게 15년째 사랑을 베풀어온 주부(6월 5일자), 만삭의 몸에도 자신을 기다리는 노인들에게 인터넷을 가르쳐 주기 위해 매주 복지관을 찾은 주부(5월 29일자)….

대부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각박한 사회라지만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이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봉사와 선행에는 건강이나 가난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조금만 힘을 잘못 주면 뼈가 부러지는 희귀병에 걸린 상태에서도 탈선 청소년과 범죄자에게 줄곧 사랑의 편지를 써온 중증 장애인(1월 1일자), 급성 뇌출혈의 후유증을 겪으면서도 불우이웃에게 밥과 빨래를 해주는 경찰관(6월 12일자) 등 남보다 어려운 처지에서도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서 기쁨을 찾아온 이들이 많았다.

교통수단을 7번이나 갈아타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매달 섬을 찾아 주민들의 건강을 돌봐 온 내과의사(3월 27일자), 무의탁 행려의 이를 돌봐주고 무료로 틀니를 만들어 준 치과의사(1월 10일자) 등 남몰래 선행을 쌓아 온 의사들의 모습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했다.

사연이 보도된 뒤엔 천사들의 손길이 더욱 바빠졌다. 선행 사실을 안 주변 사람들의 후원이 잇달았기 때문.

낙도 의료봉사를 하는 김선혁 씨(3월 27일자)는 기사가 나간 뒤 한 제약회사에서 약품 후원을 받았다. 또 장애아들에게 악기 연주를 지도하는 구능회 씨 가족(3월 13일자)에게는 보도 이후 동네 사람들이 집에 있던 악기를 많이 가져다주기도 했다.

하지만 선행이 알려지는 과정에서 곡절도 많았다.

“괜히 사람을 돕는 척하고 생색내는 것 아니냐”는 등 악의적인 전화도 받았고 다른 복지기관에서는 “왜 우리는 도와주지 않느냐”며 다짜고짜 무리한 요구를 해오는 통에 난감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려는 이들의 겸손 때문에 취재팀은 번번이 인터뷰 요청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주인공들은 사람들이 봉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봉사를 특별한 것으로 보는 인식을 떨치는 게 중요해요. 특별한 자격이나 조건이 필요한 게 아니라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거든요.” 경로당에서 이웃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호박동아리’ 회원 이인신 씨(7월 10일자)의 말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전지원 기자 podragon@donga.com

▼봉사 참여는 어떻게?▼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길을 찾는 것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지역마다 시별, 또는 구별로 자원봉사센터가 마련돼 있어 자신이 편리한 시간에 원하는 종류의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기 때문.

인터넷이나 전화로 상담하면 후원 등 금전적 지원을 비롯해 호스피스, 불우어린이 학습지도, 독거노인 반찬 만들어주기 등 희망에 따라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자원봉사 전문 시민단체인 ‘볼런티어21’에서 운영 중인 ‘야, 신난다, 자원봉사 캠페인’ 웹사이트(www.lalalavol.net)에서도 봉사활동과 관련된 아이디어나 참여 방법을 제공한다.

단, 무리한 욕심이나 성급함은 금물. 자신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조금씩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봉사자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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