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국무회의에서 “행정수도 계획은 정부의 명운을 걸고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고 한 것이나, 지난달 18일 기자간담회에서 “행정수도 찬반 논란에는 ‘대통령 흔들기’의 저의가 감춰져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노 대통령의 ‘불신임 퇴진 운동’ 발언은 자신의 진퇴 문제와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연결시킨 것이어서, 최근 확산되고 있는 반대 여론을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물론 김종민(金鍾民) 청와대 대변인은 “행정수도 문제를 재신임과 연계한다든지,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인천지역 혁신발전 5개년계획 토론회에 참석한 노 대통령은 행정수도에 관한 질문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인천은 수도권이니까 손해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는 만큼 꼭 말하고 싶은 게 한두 가지 있다”며 이같이 말을 꺼냈다.
노 대통령은 “수도권이 이 속도로 계속 과밀, 비대화하면 서울과 인천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데 불리하다”며 “계획되지 않은 팽창의 길을 걸어온 수도권을 새롭게 재편성, 재설계해야 한다”고 수도 이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또 “수도권의 규제를 풀어달라고 수도권이 요구해도 지방이 강력히 반대해왔다”며 “지방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부도 국회도 수도권의 규제를 단 한 줄도 건드리기 어려운 만큼 지방을 살리는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수도권 규제를 재편성해 상생(相生)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이어 노 대통령은 “수도 이전을 안 하고 지방을 발전시켜주면 되는 것 아니냐 하는데, 실제로 그게 쉽지 않다”며 수도권의 ‘기득권론’을 폈다. 노 대통령은 그 예로 “서울 한복판에 거대한 빌딩을 갖고 있는 신문사들이 반대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행정수도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수도권은 ‘욕심’ 때문에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옹색한 공룡 같은 상황으로 가게 된다”며 마치 일부 신문사가 기득권 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것처럼 몰아붙였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수십번 토론회를 했는데 언론이 못 본 체하니 국민은 토론도 설득도 없었던 걸로 느끼고 있다”며 최근 제기되는 ‘정부의 설득과 홍보 부족’ 지적을 언론 탓으로 돌렸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인천과 울산이 막대한 인구와 교육 수요가 있는데 국립대가 없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공무원들이 간이 작아서 오물거리고 있는데 진지하게 검토해서 관료적 사고나 행정적 무사안일 때문에 안 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한나라 “또 대통령직 걸고 올인”▼
“또 사고를 쳤구먼. 더 이상 대꾸할 가치도 없다.”
8일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 반대를 나에 대한 불신임과 퇴진운동으로 느끼고 있다”고 발언한 것을 전해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발언에 내성이 생겨 더 이상 놀라는 국민은 없다”며 “충격도 받지 않지만 대통령의 언행에 그리 특별한 무게나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논평했다. 노 대통령의 ‘올 인’ 승부수에 더 이상 말려들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도 “대통령이 말 좀 가려서 해야지, ‘짐은 곧 국가’도 아닌데…”라는 말만 했을 뿐 더 이상의 언급은 없었다. 그는 기자들의 잇단 질문에 시종일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가로저었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는 “대통령 말씀대로라면 국민의 50∼60%가 대통령을 불신임하고 퇴진시키기 위해 수도 이전을 반대한다는 것인데 그게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형오(金炯旿) 사무총장은 “심심하면 대통령직을 걸고 국민을 협박하고 불안하게 하는 일은 제발 그만두길 바란다”며 “재신임과 탄핵으로 재미를 본 것으로 그쳐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엔 아무도 대통령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잇단 盧대통령 지지발언▼
노무현 대통령이 8일 “(수도 이전론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운동, 퇴진운동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한 데 이어 건설교통부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가 ‘수도 이전’을 지지하는 발언을 잇달아 하고 나섰다.
강동석(姜東錫) 건교부 장관은 이날 건교부 기자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차피 이제는 거둬들이기 어려운 것 아니냐”면서 “이 시점에서 수도 이전 문제를 국민투표에 회부하거나 재검토한다는 것은 합리성이 없고 국가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강 장관은 또 “남한에서도 수도권과 지방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 후를 걱정하는 것은 너무 큰 비약”이라며 “남한만이라도 균형발전의 토대를 만들어야 통일 후 남북한이 같이 발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도권 이전 비용과 관련, “행정수도 건설에 돈이 본격적으로 쓰이는 것은 2008년부터이며 그 때부터 연간 1조원을 웃도는 수준의 비용이 든다”면서 “이 정도 비용이면 우리의 재정 능력이나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크게 주름살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승(朴昇) 한은 총재도 이날 콜금리 목표치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행정수도를 새로 만드는 일은) 경제적으로는 ‘분당’을 하나 만드는 것과 같으며 우리 국력으로 볼 때 큰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박 총재는 노태우(盧泰愚) 정부 당시 자신이 건설부 장관으로 신도시를 건설했던 경험을 설명하면서 “분당을 개발하면서 그 개발이익으로 자유로를 놓고 지하철을 건설했다”면서 “행정수도 건설에 드는 부담은 정부청사 건축 비용 정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적 측면 이외에 정치, 사회적 영향은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면서도 “수도권 집중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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